매일신문

[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손기정체육공원의 핀오크나무

히틀러가 준 시상목(施賞木)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마라톤 영웅 손기정' 특별전(10월 9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금메달과 우승상장, 월계관 등과 당시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던 그리스 청동투구(보물 제904호)도 공개되었다. 이 밖에도 마라톤평원에서 아테네까지 42.195㎞를 달려가 페르시아전의 승전보를 알린 그리스 병사 필립피데스 조각상과 손 선수의 베를린올림픽 우승 당시 신문기사, 각종 기록물 등도 전시되었다.

손 선수는 나라 잃은 슬픔에 잠겼던 일제강점기때 비록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었지만 전 국민을 크게 기쁘게 한 분이다.

그때 동아일보는 가슴에 단 일장기를 지우고 대신 태극기를 그려 넣어 시상대에 오른 손 선수의 모습을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무기정간(279일간)을 당했다. 주모자 중 한 분인 사회부장 현진건 선생은 대구 출신이다.

그런데 대구와 특별한 연고가 없는데 웬 손기정 선수 특별전일까? 답은 명백하다. 이달 27일부터 9월 4일까지 9일 동안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육상의 꽃은 마라톤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육상경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손 선수처럼 우리 선수 중에 우승자가 나오기를 염원하는 뜻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조직위원회에 의하면 207개 국, 6천여 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해 역대 어느 대회보다 큰 규모로 치러진다고 한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하계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3대 스포츠의 하나라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마라톤을 비롯한 46개 종목 우승자에게도 나무를 주는 것과 달리 기념식수를 장려한다고 하니 무슨 나무일지 궁금하지만 1936년 제11회 베를린 하계올림픽대회 마라톤 우승자에게 총통 히틀러가 핀오크나무 한 그루를 주었다. 당시 보도된 사진에 의하면 시상대에 서 있는 손 선수의 머리에는 월계관이, 손에는 나무 1그루가 심어진 작은 화분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모습은 손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그 작은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었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영웅은 갔지만 시상식에서 받은 나무만은 수도 서울의 손기정체육공원에서 자라고 있다.

올림픽에는 다양한 종목이 있고 각 종목마다 우승자에게 핀오크나무가 주어졌는지 모르겠으나 이 나무는 히틀러의 체온이 남아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유품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특히 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독재자이지만 그의 유품이 동아시아 좁은 나라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은 손 선수의 뒤를 이어 세계 마라톤대회를 제패하겠다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후배나 우리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퍽 흥미로운 일이다.

손기정체육공원은 그의 모교 양정학교가 외곽지로 이전하고 난 자리에 만든 공원이다. 그는 히틀러에게 받은 이 나무를 모교 교정에 심었다. 압제에 시달린 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던 손 선수가 남긴 귀중한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서울특별시 기념물(제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데 나무 이름을 월계수(月桂樹)로 표기해 놓았다. 마라톤 우승자에게 쓰였던 월계관(月桂冠)은 월계수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부상으로 받은 나무는 핀오크나무다. 따라서 표지석의 나무 이름을 핀오크나무가 정확한 표현이다.

핀오크(pinoak)나무는 나뭇잎의 끝이 뾰족(pin)한 참나무(oak)라는 뜻이다. 조경업자에 의해 대왕참나무로 번역되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생장속도가 빠르고, 단풍이 아름다우며, 병충해의 피해도 적어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주변의 가로수도 이 나무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서울'부산'인천에 이어 4대 도시로 위상이 추락한 대구시가 도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월드컵대회와 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야심차게 준비한 국제행사다. 세계 80억 인구의 눈이 대한민국 동남권의 한 도시 대구로 쏠린다고 한다.

자원봉사, 경기장 참여, 가로변 정비, 자동차 홀짝제 이행 등 시'도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로 성황을 이루었으면 한다. 특히 마라톤에서는 반드시 우리선수가 우승하기를 염원한다. 손 선수가 직접 심은 핀오크나무의 정령(精靈)이 보살펴 줄 것으로 믿는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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