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소리 낮고 고르지만 예상치 못한 '함축'과 '폭음'

은빛 소나기/박명숙 지음/책 만드는 집 펴냄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명숙 시인이 첫 번째 시집 '은빛 소나기'를 펴냈다. 박명숙 시인의 작품들은 굉장히 서정적이고 심미적이다. 시적 목소리는 낮고 고른데, 그 낮은 목소리 안에 예상치 못했던 '함축'과 '폭음'이 숨어 있다.

'풋잠과 풋잠 사이 핀을 뽑듯, 달이 졌다/ 치마꼬리 펄럭, 엄마도 지워졌다/ 지워져, 아무 일 없는 천치 같은 초저녁' -초저녁-

초저녁 얼핏 든 풋잠 사이로, 기억을 지탱하던 핀이 뽑히고, 달이 지고 엄마도 지워졌다. 기억도 사라지고, 내 삶의 원형이었던 엄마도 달도 사라지고 말았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천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시인은 존재와 기억, 소멸과 무상을 이렇게 짧고 강렬하게 표현한다.

정진규 시인은 "박명숙의 시구들은 매우 간절하고 숨가쁘다. 우리들의 영혼을 한껏 확장하여 시의 진정성, 그 핵에 온몸을 밀착시키는 황홀을 맛보게 한다. 조심스럽기는 하나 우리 시조가 전래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탄과 과장을 이렇게 내밀한 긴장과 탄력으로 자리바꿈한 시조를 만나보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더불어 정 시인은 "박명숙의 간절함은 빈틈을 용납하지 않는 막장의 그것인데 단절이나 좌절이 아니라 막장의 힘으로 열림의 통로를 허락하는 자유"라고 평한다.

123쪽, 9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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