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특수…백화점·율화동 '대박' 시장·동성로 '실망'

30일 오후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선수촌 인근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식료품을 집어들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30일 오후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선수촌 인근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식료품을 집어들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맞아 대구 유통가와 외식 업계가 몰려드는 외국 손님들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선수단과 관람객을 포함해 4만여 명에 이르는 외국인들이 대회장 주변을 누비며 쇼핑과 먹을거리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륙도시 대구가 잠깐이나마 '국제 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것.

하지만 전통시장과 동성로 등은 기대한 만큼 매출 증대 효과가 없어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백화점, 선수촌 주변 상점은 웃음

육상대회 특수를 가장 톡톡히 누리는 곳은 선수촌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동구 롯데쇼핑 프라자점.

대회 시작 전부터 매일 300~400여 명이 넘는 선수 및 임원진들이 찾고 있다.

30일 오후 이곳을 찾은 아도 라작(23'나이지리아) 씨는 디지털 카메라 코너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한참을 우뚝 서 있던 그는 마침내 2개의 디카를 집었다. 라작 씨는 "나이지리아에서는 한국 제품이 수입품이어서 비싸 못 산다. 이곳에서는 훨씬 싸 가족에게 선물하려고 두 개를 골랐다"고 활짝 웃었다.

케냐 소속 팀닥터 빅터 킵케메이(29) 씨는 LED TV 속에 나오는 우리나라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국 제품을 고향에서도 본 적 있다. 깔끔하고 훌륭한 영상에 절로 눈길이 간다"며 "하나 들고 가고 싶은데 짐 부담에 고민 중"이라고 했다.

육상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와 임원들에게 인기 만점 품목은 가전제품이다.

이들은 제품 시연과 구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디지털 파크'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환율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가격 차이도 이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이유. 남성들의 경우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TV 등 첨단기기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여성들은 주방용품과 헤어 스타일기 같은 미용용품에 눈길을 줬다.

아프리카 지역 한 국가의 임원인 마리아 웹힐(49'여) 씨는 "가전제품 모두가 좋은 제품인데 환율 때문인지 가격이 매우 싸다. 아들을 위해 가정용 게임기를 출국 전에 꼭 사야겠다"고 흡족해했다.

롯데쇼핑 프라자 측은 "IT 가전을 중심으로 일 평균 매출이 30% 이상 늘었다"며 "질 좋은 침구류와 홍삼제품 등도 외국 선수단에게는 인기 품목으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스타디움 인근 안경점들도 반짝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산 안경이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까지 저렴하다는 입소문에 외국인들이 예약까지 하며 안경을 맞추고 있다는 것. 수성구 신매동의 한 안경점 주인 조갑식(54) 씨는 "외국인을 상대로 하루 10개, 100만원어치가량 안경을 팔고 있다. 3만원대 돋보기, 30만원대 누진다초점 렌즈 등 특수품목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도심 백화점들도 출국 때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tax free'(택스프리)를 신청하는 외국인 수가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8월 이전 월 평균 50건이던 택스프리 신청이 최근 100여 건으로 2배가량 늘었다"며 "택스프리로 의류, 소형가전, 건강식품을 많이 구입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영미권 외국인들이 쇼핑에 쉽게 돈을 쓸 것 같지만 의외로 가격에 민감해 할인율을 꼼꼼히 따진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기장 주변 식당가에도 활기가 넘치고 있다.

호식이 두마리 치킨 본부 관계자는 "대회 시작 이후 치킨 매출이 20~30% 늘어났고 경기장이 있는 수성구 지역 영업점은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주문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도 "경기장이 있는 수성구 영업점들의 경우 대회 시작 전후로 내국인 관람객은 물론 외국인들이 몰려들어 햄버거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재래시장, 동성로 상가, 카지노는 울상

육상대회로 대구가 들썩이고 있지만 전통시장과 도심 상가는 매출 증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교동시장에서 의류 판매업을 하는 정수자(65'여) 씨는 "외국인 손님이 평소에 비해 30~40%가량 늘었다. 하지만 '한국 제품이 신기하다'며 구경하거나 사진만 찍고 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동성로 한 전자제품상점에서 일하는 김모(29'여) 씨는 "30여 분간 디지털카메라를 종류별로 꺼내 만져보다 휑하고 나가버린 외국인도 있었다"며 "대회 출입증을 목에 건 외국인이 하루 평균 30명가량 오지만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푸념했다.

정찰제를 이유로 전통시장에서 에누리를 해주지 않아 외국인들이 찾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문시장 관광정보센터에서 일하는 박정순(45'여) 씨는 "외국인들은 자국에서 흥정을 하고 에누리를 받는 재미에 전통시장을 찾는다"며 "전통시장 측이 육상대회 입장권을 소지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인 행사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올해 초 문을 열고 육상대회 외국인 손님만 기다린 대구카지노도 특수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

이곳 관계자는 "외국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등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반응이 시원찮다"며 "외국인들이 대회에만 집중하느라 카지노에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다. 카지노를 찾을 일반 외국인 관광객들을 얼른 맞이하고 싶어 대회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푸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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