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통령의 고향

추석이 다가오니 고향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에 마음의 안식처로 인식된다. 과거에는 크게 출세해 고향을 찾는 것이 장부(丈夫)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그래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이 생겼다. 고생 끝에 최고 권력자가 돼 고향을 찾으면 얼마나 감개무량하겠는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사례가 유명하다.

유방은 기원전 195년 경포의 반란을 진압하고 도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건달 생활을 하던 고향 패현(강소성 서주시)을 찾았다. 옛 친구와 동네 어르신을 모두 청해 잔치를 벌이며 놀았는데 춤을 추다가 옛 생각에 눈물까지 주르르 쏟았다. 돌아가는 길에 고향 사람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내놓았다. 고향 패현을 '천자의 사읍지'로 삼아 대대로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줬다.

현대사회에서는 최고 권력자가 한고조처럼 고향에 노골적으로 특혜를 주기 어렵다. 은근슬쩍 예산을 일부 증액시켜 주거나 도로와 항만 시설을 먼저 건설해 주는 정도다. 그 혜택이란 것도 고향 사람들의 소득과 관계없는 것이라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형님 예산' 논란처럼 자그마한 혜택이라도 있을 듯하면 야당과 언론이 마구 떠들어대니 정작 대통령의 고향에선 '역차별'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일본의 가고시마와 야마구치 시를 취재한 적이 있다. 가고시마는 관광객들이 꽤 붐비지만 일본 내에서 그리 비중 있는 도시는 아니다. 야마구치 시는 인구 19만 명의 작은 시골 도시다. 두 도시는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주무대였고 태평양전쟁 직후까지 수많은 총리대신과 거물 정치가를 배출한 곳이다.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과거의 영광만 곱씹고 있었다.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정권만 잡았을 뿐 경제적 혜택은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아칸소 주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만 해도 무명의 고장이었다. 클린턴이 8년간 집권하고 아칸소 사단이 워싱턴 정가를 휩쓸었다고는 하지만, 현재도 예전 그대로 농업 중심의 자그마한 주(州)에 불과하다. 포항도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당선 직전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10년 전에 비해 인구가 1만 명밖에 늘지 않았고, 도심의 모습도 바뀐 것이 없다. 포항 시민들도 대통령이 줄 혜택을 조금이라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시민들의 힘으로 지역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

박병선(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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