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시작,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어낸 사람을 자수성가(自手成家) 했다고 한다.
법무법인 다빈치와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대산이엔씨㈜를 이끌고 있는 하일호(46) 변호사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하 변호사의 학력은 간단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검정고시다. 정규 학교라고는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것이 전부다. 그래서 하 변호사는 스스로 '비규격품'이라고 말한다. '보통사람'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서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던 하 변호사의 삶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면서 가시밭길로 바뀌었다.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가장이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는 학습지를 판매하고, 신문배달과 공장보조원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자연히 학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그저 생계를 잇기 위해 6년을 질풍노도처럼 살았다.
그는 혹독한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것을 포기하고 사는 삶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종교적 신념과 믿음이 없었다면 삶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는 맹세와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헌책방에서 몇 권의 책을 사서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생각으로 목숨을 걸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는 고개를 들어 허허 웃었다. 절실하게 기도하던 일을 하게 된 사람이 목숨을 걸듯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기적이 일어났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그가 3년 동안 공부에 집중한 결과 연세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중퇴한 후 학교생활을 하지 않은 그는 대학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베이스(기초)가 전혀 다른 친구들과의 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풍부한 독서와 문화생활을 영위하던 친구들과 제가 어울리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흔들리던 그의 삶을 바로 잡아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하 변호사보다 한 살 많은 부인이었다. 그의 부인은 오기 하나로 버텨 온 그의 삶을 포근하게 감싸줬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드러움도 가르쳐줬다. 그런 지혜로운 부인의 내조 덕분에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변호사 외에 다른 명함이 하나 더 있다. 자동자 부품업체 대표이사 명함이다. 사법연수원에서 경제'기업관련 법률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품은 뒤 현역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가 청사진이 좋은 기업을 보고서는 직접 인수한 것이다.
그는 "요즘 기업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원래 기업 자체가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며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