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부호들의 욕망에 희생당하는 중동의 아이들

사막으로 사라진 아이들/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이승숙 옮김/뜨인돌 펴냄

책장에 오래 자리 잡고 있는 책들은 어느새 '정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정물의 언저리에는 정지된 시간이 고여 있다. 그 책을 펼쳐들지 않는 이상 그 책은 영원히 정물일 뿐이다. 책을 펼치면 책 속에서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밥을 먹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생생한 4D의 세계가 펼쳐진다.

오래 묵혀, 이제 잊어서 미안한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런 종류의 책이다.

파키스탄 시골에서 살고 있던 라시드네 가족 앞에, 어느 날 낯선 사내가 찾아온다. 사내는 여덟 살인 라시드와 네 살 난 샤리를 일 년 동안만 부잣집 아이의 놀이 상대로 보내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가난한 과부인 라시드의 어머니를 유혹한다. 원하는 건 뭐든지 가질 수 있다는 말에 혹한 라시드는 어머니를 조르고, 결국 라시드와 샤리는 사내를 따라서 두바이로 간다. 그러나 사내의 제안은 거짓말이었다. 라시드와 샤리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낙타 막사에 팔려간다.

라시드는 사막의 극단적인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낙타를 몰아야 했고,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먹을 것도 충분히 받지 못했다. 다른 막사에서 지내던 네 살짜리 동생 샤리는 낙타에서 떨어져 심한 부상을 당한다. 낙타를 잘 못 타는 아이들은 제대로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사막 한가운데서 죽어간다.

이 책은 부호들의 욕심에 희생당하는 중동 아이들의 현실을 고발한 청소년 소설이다.

낙타 경주는 오일 달러가 넘쳐나는 산유국인 UAE와 카타르 등에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다. 이 경주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몸집이 작은 기수가 유리하다. 심지어는 네 살짜리 아이들을 기수로 쓰기도 한다.

낙타 주인들은 기수들에게 설사약을 먹이거나 전기 충격을 주어 체중을 감량시키고, 기운이 다 빠진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아이들은 서로밖에 의지할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경주 성적에 따라 반목하고 질투한다. 잔혹한 세상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은 작가의 풍부한 취재와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라시드는 경주에서 우승하고, 동생과 함께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는 동화 속 해피엔딩일 뿐이다. 운 좋게도 그 해부터 로봇 기수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법안이 통과됐다. 최근 낙타 경주에서는 리모컨을 누르면 채찍질을 하는 로봇 기수가 어린이 기수를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수만 명의 아이들은 또 다른 이유로 착취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책을 덮는다. 고요하고 평온한 일상이다. 책 속 아이들은 여전히 낙타 위에서 울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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