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이 많다고 얕잡아보지 마라"…대구시탁구연합회 60대 여자팀

뛰어난 실력 갖춘 할머니 5총사…어르신생활체육대회 탁구 우승

전국어르신생활체육대회 60대 여자 탁구 단체전 정상에 오른 이숙자
탁구로 전국을 제패한 할머니 5총사. 일주일에 세번은 탁구장에서 만나 최강 실력을 뽐내며 연습을 한다. 성일권 기자
전국어르신생활체육대회 60대 여자 탁구 단체전 정상에 오른 이숙자'전금연'박매자'이순자(왼쪽부터) 할머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탁구로 전국을 제패한 할머니 5총사. 일주일에 세번은 탁구장에서 만나 최강 실력을 뽐내며 연습을 한다. 성일권 기자

무적의 생활체육 할머니 탁구팀이 있다. 전국대회에서 이 팀을 예선부터 만났다면 참으로 복이 없는 일(?)이다. 상대는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이길 가망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진표를 비켜가더라도 우승의 꿈은 접어야 한다. 이들을 꺾고 우승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박매자(69)'이숙자(67)'전금연(66)'이순자(66)'서영애(63) 씨 등 5명의 할머니로 구성된 대구시탁구연합회의 60대 여자 팀이다. 대구시탁구연합회 임만진 사무국장은 "대구의 여자 60대 탁구 실력은 전국 최강이다. 그중에서도 이들 5인방은 톱클래스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매자'이숙자 등 5명의 할머니는 대구 대표 선발전을 거쳐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11 전국어르신생활체육대회 탁구 여자 60대부 단체전에 출전했다. 별 어려움 없이 결승에 올라 충남을 3대0으로 완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5단식3선승제로 치러진 결승에서 이순자'이숙자'서영애 할머니가 내리 3판을 이겨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전금연'박매자 할머니는 결승전에 나서보지도 못했다.

5회째 맞은 이 대회에서 이들이 들어 올린 두 번째 우승컵이었다. 멤버 1명이 바뀌었지만 이들은 제1회 대회 때도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우승자는 3년간 출전을 금지해 그동안 나오지 못했다, 4년 만에 다시 나선 대회서 보란 듯 또 한 번의 우승을 일궈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9월 30일~10월 1일 전남 광주에서 열린 2011 아시아 시니어 라지볼 탁구대회서도 여자 60대부 단체전에 출전해 정상을 밟았다. 중국과 일본의 생활체육 탁구대표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이들을 꺾지 못했다. 할머니들은 "아시아권에서는 우리를 당해낼 할머니 팀이 없는 셈이니 우리가 아시아 챔피언이다"며 웃었다.

13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한 탁구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폼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호흡도 척척 맞았다. 이순자 할머니는 "30년 넘도록 함께 탁구를 했으니 눈빛만 봐도 서로 마음을 읽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는 노년이 됐지만 이들이 처음 만난 건 한창 건강미를 자랑할 때인 30대였다. 박매자 할머니는 "고교 때부터 탁구를 즐겼고, 계속해서 탁구를 배우며 실력을 쌓다 30대가 돼서 전국적인 탁구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탁구가 지금처럼 널리 보급되지 않아 모임이 많지 않았을 때였다. 전직 탁구선수들을 주축으로 제법 실력을 갖춰야 가입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었다. 이숙자 할머니는 1964년부터 1967년까지 탁구 국가대표를 지낸 엘리트 선수 출신이었고, 나머지 할머니는 탁구를 좋아해 개인적으로 실력을 키워 이 모임서 만나 3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탁구를 좋아하는 파트너로, 또 삶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로 이들은 30년 우정을 이어온 셈이다.

요즘도 일주일에 3번 이상은 탁구장에서 만나 운동을 하고 있다. 이순자 할머니는 "탁구를 함께하다 보니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나 하고 놀랄 때가 있다"며 "땡땡하던 얼굴에 생긴 주름이 없다면 나이마저 잊고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탁구가 좋았던 것은 순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고, 무엇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박진감 때문이었다. 전금연 할머니는 "탁구는 너무 오묘해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감각이 무뎌져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잘 친다고 상대를 얕잡아봐서도 안 되고, 매 경기 집중하지 않으면 상대를 이길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숱한 대회서 1등을 했고, 전국적 명성도 얻었지만 아직도 배우고 익힐 것이 더 있다며 이들은 지금도 개인 강습을 받으며 실력 향상에 애쓰고 있다. "재작년부터 60대 이상은 기존 공보다 조금 큰 44㎜ 라지볼을 경기에 사용하는 데, 이 공은 조금 큰 대신 반발력이 떨어져 느리고 바닥에 닿은 후 튕김이 달라 공의 속성을 제대로 알려면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다.

정상에 서 있기 때문에 갖는 욕심처럼 들렸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열정이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해주는 듯했다.

이숙자 할머니는 "젊었을 땐 승부욕이 대단해 지기라도 하면 늦은 밤까지 몰래 연습을 해 약점을 가다듬는 악바리였다"며 "근성과 열정이 덜 늙도록 했고, 늘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했다.

젊은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도 탁구가 주는 즐거움이다. 전금연 할머니는 "할머니라고 얕잡아보고 한 판 붙어보자고 하는 젊은 남자들이 가끔 있는데, 경기를 마칠 때면 할머니들 탁구 실력에 놀라워하며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한다"며 "그럴 땐 자연스럽게 젊은이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고 했다.

요즘은 승부에만 연연해하지 않는다. 아직도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지만, 설령 진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고도 졌을 땐 나의 약점을 찾기보다 상대가 잘 쳤다며 장점을 인정해주고, 이겼을 땐 파트너가 돼준 상대에 겸허하게 고개를 숙인다. 비우는 마음이야말로 탁구가 가르쳐준 인생 최대의 선물이다.

"탁구를 하지 않았으면 노인이 돼서 별다른 취미 없이 무료하게 시간만 보냈을지도 모른다. 탁구채를 쥘 힘만 있으면 평생 즐길 수 있으니, 탁구만큼 재미있는 운동이 없다."

할머니들의 탁구 예찬은 끝날 줄을 몰랐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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