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10월이 가면'이 들리는 만추

이맘때쯤이면 팝가수 배리 매닐로우의 가을 명곡 '10월이 가면'(When October Goes)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품 안에 아직 따스하게 남아 있는 그녀의 체온을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남자의 애절함이 감미로운 목소리에 묻어난다. 아직 더 할 사랑이 남아 있는데, 가버리는 10월의 애잔함이 가을 정서를 자극한다.

늦을 만(晩), 가을 추(秋). 세상의 고비를 수도 없이 겪고, 뒤늦게 찾아온 사랑이 낙엽처럼 처연한 영화 '만추'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년)는 올 초에 현빈과 탕웨이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사진)되었다. 특별휴가를 받아 감옥에서 나온 여인과 범죄조직에 쫓기는 한 남자의 운명적인 만남과 이별은 늦은 가을날 찾아온 사랑처럼 절절한 감정을 길어 올린다.

1966년 작에서는 신성일과 문정숙이 주연이었고, 1981년 김수용 감독의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정동환과 김혜자가 주연을 맡았다.

살인죄로 복역 중인 여죄수 혜림(김혜자). 그녀가 사흘간의 특별 휴가를 얻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어머니 산소를 찾기 위해 강릉행 열차를 탄다. 이미 그녀의 영혼은 말라 있다. 미련도 염원도 없고, 사랑도 여죄수에게는 지독한 사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열차에서 한 청년(정동환)을 만난다. 그는 범죄조직에 휘말려 쫓기고 있다. 여자 호송원(여운계)의 날카로운 감시 속에 둘은 눈빛을 주고받는다.

바늘 끝처럼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두 영혼의 정사. 가혹한 운명에 치를 떨고 있는 그녀에게 사랑이라니. 그래서 그 남자의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교도소 앞에서 헤어지면서 묻는다. "이름은? 이름이 뭐예요?" 남자가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사랑은 그녀의 전부가 된다.

남은 2년간의 감옥 생활에서도 숱하게 불렀을 그 이름. 마침내 그와 만나기로 한 날. 아침부터 기다리기 시작한다. 가을의 호숫가에는 낙엽이 땅을 덮고 있다. 찬 공기가 수면을 스치고, 메마른 가지가 허한 소리를 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그 시간 그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것을 알 길 없는 그녀는 그 벤치를 떠날 수가 없다. 마침내 체념한 듯 일어선 그녀를 휘감는 것은 낙엽이다. 쏟아져 내리는 낙엽이 그녀의 발길을 잡는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그녀의 마음처럼 말이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뤄질 수 없기에 안타깝고, 다시 만날 기약이 없기에 더욱 애절한 영화 '만추'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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