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지도자로 활동하며 국민들의 성원을 받아 온 박원순(55) 변호사가 26일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야권단일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최초의 서울시장이다. 대통령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민단체 대표 출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다.
국민들이 팍팍한 서민생활을 개선하지 못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한 것이라는 해석부터 야권단일화 효과가 발휘된 것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주장이 있다. 바로 '현 상황이 정치권 전체의 위기'라는 설명이다. 안철수 돌풍이 그 위기의 시작이었다면 박원순 무소속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은 위기가 가시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의 못 따라가는 여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역시 이 같은 정치권의 분위기에 동의한 바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달 6일 10'26 재'보궐선거 지원유세에 나설 것을 결정하면서 "지금 상황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치 전체가 위기"라고 규정했었다.
정치권이 큰 위기의식을 느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민운동가가 제1야당 대변인 출신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재선 국회의원을 제치고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되는가 하면 여야를 막론,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 구하기' 행보를 사회활동만 펼쳐왔을 뿐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국립대학교 교수가 일축했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비정치권 인사들의 대결에서 판판이 비정치권 인사들이 승리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역시 정당정치의 위기가 분명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진영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집권 말기로 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 등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국민들이 기성정치권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대대적인 쇄신작업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반국민들의 반응은 더욱 적나라하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김상호(41) 씨는 "선거가 다가오자 각 정당에서 앞다퉈 복지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살펴보니 모두 그동안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주장해 왔지만 기성 정당들이 '재정상황을 감안하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던 내용들"이라며 "당선만 되고 나면 돌아서서 '다른 말' 하는 기존 정당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거세지는 정당정치 무용론
기성정당들도 사면초가에 빠졌다.
먼저 한나라당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의 압승으로 최악의 사태를 면하긴 했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후속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도부 사퇴 등 다양한 당 쇄신방안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에서는 향후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해체 수준의 쇄신 요구'가 일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과 전통적인 선거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핵심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선거 패배 이후 관례적으로 나타나는 쇄신요구와는 강도가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야당과 함께 시민사회라는 적수가 추가된 만큼 한나라당의 변화 폭이 크지 않을 경우 오는 두 차례 큰 선거를 치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권단일후보의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표정이 밝지 못하다. '박원순 후보의 승리가 민주당의 승리'라는 손학규 대표의 논평에도 불구, 정치권 안팎에서 민주당에 '불임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길은 더욱 캄캄하다.
안철수'박원순'시민사회진영이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경우 민주당의 입지는 줄어드는 수준이 아니라 무의미해지는 경우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호남 중심의 민주당과 개혁을 코드로 한 신생정당으로 당이 분리되거나 한결 결속력이 높은 야권연대의 모양새가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며 "어떤 경우에도 지금까지 상상했던 상황 이상의 모습이 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당들이 정당정치 무용론이라는 거센 도전에 어떻게 응전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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