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구청들은 지금 '예산편성 전쟁' 중

국비 있어도 구비 못구해 발동동

#1. 14일 대구 동구 율하교 인근 율하천. 대구 동구청은 지난 7월부터 매호동~금호강 합류지점인 율하천 2㎞ 구간에 2014년 완공계획으로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예산만 80억원가량 필요하지만 현재 확보된 예산은 국비 13억5천만원뿐이다. 구청은 각각 4억5천만원의 시비와 구비를 계획했지만 구 예산은 확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일부라도 예산을 편성하려고 하지만 현재로는 사실상 구비를 한 푼도 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 대구 서구 이현동에 있는 서구문화회관. 1998년 건립된 서구문화회관은 내부 시설이 낡아 내년에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다. 서구청은 국비 8억원과 대구시와 서구청 예산을 각각 6억원씩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이 중 국비는 확보됐지만 시비는 8억원 중 2억원만 확보됐고, 구비는 한 푼도 확정하지 못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예산 마련이 힘들어 당초 계획인 내년에 완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대구시 각 구청이 내년도 예산 편성 시기가 다가오면서 전쟁을 치르다시피 하고 있다. 각 구청은 이달 말까지 구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해야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세입과 나날이 늘어가는 세출을 맞추기 어려워 예산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 치르는 각 구청=대구 동구청의 내년도 소요예산은 3천200억원가량이지만 국'시'구비를 모두 합쳐도 3천억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200억원가량이 모자라 주민들이 요구하는 율하동 주택가 이면도로 건설 등 각종 숙원 사업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율하천, 동화천, 불로천 등 생태하천조성사업에 국비 37억원이 내려왔지만 매칭예산(국'시비 대응 예산)이 없어 국비만으로 사업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남구청도 내년 2천억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국'시'구비 등을 모두 그러모아도 1천700억원에 불과하다. 300억원을 메울 방법이 없다. 남구청 관계자는 "각 부서에서 요구하는 예산의 70~80%만 편성하고 나머지는 내년도에 추가경정예산에서 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구청의 경우 내년 세입이 1천700억원가량이지만 구청 각 부서가 요구하는 사업비는 3천400억원 규모다. 서구는 세입 규모가 1년에 200억여원에 불과한 탓에 자체 예산으로 각 부서에 지원할 수 있는 돈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중구청은 당장 내년도 예산(1천224억원)이 올해 예산 규모(1천254억원)보다 30억원가량 줄어들 처지다. 김원일 씨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된 장관동 일대를 복원하는 사업은 부지 매입비 10억원이 없어 장기 사업으로 미뤘고, 태평로 3가 중구보건소와 노인복지회관 신축 사업도 예산 부족으로 첫 삽을 뜨지도 못했다. 중구청은 과태료 수입 전담팀까지 구성하는 등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른바 '부자 구청'인 수성구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방세가 줄어들면서 예산 사정이 악화됐다. 순세계잉여금이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300억원가량 됐지만 지금은 거의 소진된 상태. 고모마을 진입도로 건설비 12억원과 연호마을 진입도로 건설비 15억원 등도 배정할 여력이 없어 장기 사업으로 돌렸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주민 숙원 사업이지만 재정상태가 양호해질 때까지 연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기초생활보장비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 보육료 지원 등 복지비로 100억원가량이 늘어나면서 사업을 줄일 수밖에 없다.

◆국비 대응하려다 파산지경=각 구청 예산 담당자들은 "국비에 대응하는 구예산의 매칭 복지비가 기초단체의 허리를 휘게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사회복지예산의 국고보조금인 복지비의 국비 지원 비율이 60% 수준에 불과해 40%는 지방비로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탓이다. 이들 복지비가 각 구청의 한 해 예산에서 60%가량을 차지한다. 특히 정부가 내년에 영유아 보육료 지원, 장애인 복지시설 지원 명목으로 복지비를 증가시키면서 각 구청의 살림살이가 더욱 쪼그라들고 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복지비가 매년 늘어나면서 예산 편성에서 사업예산을 확보하기가 힘들다"고 푸념했다. 실제 남구의 경우 한 해 세입 규모 300억원 중 100억원이 복지비 대응자금으로 쓰인다.

재정 전문가들은 기초자치단체의 재정 건전성을 키우기 위해선 왜곡된 세입 구조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각 구청의 세입 구조는 부동산 재산세와 도로사용료 등 각종 사용료와 쓰레기봉투비용 등 세외수입이 대부분으로 대구 각 구청의 세입 규모는 적게는 200억원에서 많게는 600억원에 불과하다. 이 예산으로는 의무적으로 배정해야 할 복지비와 국가보조금의 대응자금을 대기에도 부족하다.

대구경북연구원 박화수 객원연구원은 "사회복지 예산에 대한 국고보조 비율의 개선 없이는 지자체의 재정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비의 국비 비율을 높이는 방안밖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

한국지방세연구원 이상훈 연구위원은 "부가가치세 중 지방소비세로 전환되는 비율을 현재 5%에서 20%까지 상향 조정하는 등 국세를 지방세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이럴 경우 재정자립도가 올해 51.9%에서 2016년 55.8%로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열 한국지방자치학회장(경일대 교수)은 "일본, 독일, 미국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비슷하고, 영국은 국세 중심이지만 지방에 공정하게 배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국세 비율이 일방적으로 높다. 국세의 상당 부분을 지방세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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