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탁상도략(卓上韜略)

장평대전(長平大戰)은 중국 전국시대의 판도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온 큰 싸움이었다. 40만 대군이 생매장당한 이 전쟁으로 조나라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진나라가 천하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조나라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이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망한 것은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을 잘못 임명한 탓이었다. 당초 조나라는 명장 염파의 방어 전략으로 진나라 군대를 잘 막았다. 그러나 진나라 재상 범수의 이간책에 혹해 총대장을 조괄로 교체해 버렸다.

조괄은 명장 조사의 아들로 병법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백전노장인 아버지조차도 병법에 관한 한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조괄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군으로 기용되자 '경험이 없고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는 조괄을 장군으로 쓴다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는 남편의 유언을 들어 반대하고 나섰다. 총대장이 되어 전쟁터로 나간 조괄은 전임자인 염파의 군령과 전법을 모조리 바꿔 무리한 진격을 하다가 진나라 용장 백기의 기만술에 걸려 대패하고 말았다. 조괄의 책상에서 닦은 죽은 도략(韜略)과 실전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헛된 방책 때문에 조나라는 회생의 여지도 없는 패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순간적인 판단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미숙한 경륜을 고려하지 않고 고집과 오만을 내세우다 대사를 그르치고 파국으로 이끈 예가 적지 않은 것이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은 무조건 정의의 기사들이고, 그렇지 않은 부류들은 모두 반민주적'반역사적인 축으로 치부하는 정치 지도자가 우리 사회에는 없을까.

파란곡절이 많았던 우리 현대사는 다양한 권력의 시험무대였다. 초대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4'19 혁명에 의한 의원내각제, 쿠데타를 통한 군사 독재정권, YS의 문민정부와 DJ의 호남정권, 비주류가 득세했던 참여정부, 그리고 기업인 출신 대통령에 이어 이제는 시민권력이 부상하고 있다.

다양한 가치와 욕구가 공존하고 충돌하는 정치판은 전쟁터보다 더 복잡한 전략과 포용력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들의 감성이 끌어올린 파격적인 정치권력이 자칫 조괄의 탁상도략(卓上韜略)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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