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해 대학과 대학원 등에서 연극을 전공한 사람들 또는 연극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 즉 현장 연극인들이다. 물론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왕성하게 활동하며 연극 마니아라고 불리는 관객이 있다. 그들은 정식으로 연극 교육과정을 거치지도 않았고 오랜 연극 현장경험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은 연극 전문가에 버금가는 연극 관련 지식을 자랑하곤 한다. 또한 연극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도 평소 더 많은 편수의 연극을 보기도 하고 상세한 공연 관람 후기를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에 올려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요즘 관객들은 자신이 관람할 연극을 선정할 때 인터넷에서 공연 관련 정보를 미리 찾아보곤 하는데 이때 연극 마니아들이 쓴 관람 후기는 일반 관객들이 관람할 연극을 선정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심지어 연극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글보다는 연극 마니아라고 하는 사람들의 글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아무래도 연극 전문가들의 글이 마치 산업제품을 만든 제작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딱딱하고 형식적이며 이론적인 설명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연극 마니아들의 글은 상대적으로 쉽기도 하고, 실제 산업제품을 먼저 사용해 본 사람의 사용 후기처럼 관객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쉽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한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자. 단순한 감상문에서 벗어나 자신의 지적 수준을 자랑하기 위해 작품을 난도질하는 연극 마니아의 어설픈 평들이 한마디로 좋은 작품을 매장하기도 하고 그렇게 좋지 않은 작품을 명작인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물론 많은 관객들이 좋아하며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라면 분명히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다. 연극이란 작가, 연출, 배우, 스태프 등이 힘을 모아 만든 공동작업의 산물이자 다양한 예술형식을 거의 모두 포함하고 있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예술이론을 적용하더라도 결국 최종 평가는 예술의 소비자인 관객의 몫이 된다. 연극은 관객의 검증과 사랑이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예술일 수밖에 없다. 독자가 없는 문학은 혼자 써서 혼자 보는 일기 신세가 되고 마는 것처럼 관객이 없는 연극 또한 더 이상 연극이라고 칭하기 어렵다. 그러니 연극 마니아의 역할과 중요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가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많은 평들은 흔히 작품의 스토리와 플롯에 집착하곤 한다. '스토리가 이미 본 거다' '이미 아는 플롯이다'가 작품의 단점으로 꼭 들어가 있다. 자신은 이미 스토리를 예상할 수 있었으며 어디서 이미 본 것처럼 식상했기 때문에 작품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흔하고 오래되었다고 해서 잘못되었거나 영향력이 사라진 플롯이나 스토리는 아니다. 오히려 '로미오와 줄리엣'의 금지된 사랑이나 '햄릿'의 복수 스토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안방극장의 드라마들에서도 사랑받는 단골 플롯이며 스토리다. 어쩌면 이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플롯이나 스토리는 없다.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즉 '이미 본 스토리 같다'는 핵심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거기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더 이상의 분석방법을 모르는 초보에 불과하며 작품을 만드는 이들과 관람하는 이들 모두에게 해가 될 뿐이다.
독창성은 플롯이나 스토리의 창작 여부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 때문에 전과 같지만 다른 것이 만들어진다. 물론 이런 작업을 위해 대가들도 기존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오기도 한다.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도 사실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를 정리해 작품화했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뻔한 스토리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흔한 스토리는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그러한 특성을 이해한다면 이제는 어설픈 연극 마니아를 뛰어넘어 진정한 연극 전문가로 거듭난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