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인권위원회의 권유를 받아 쓴 책 '불편해도 괜찮아-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2010)에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했다. 그 스스로 "인권의 정신을 이보다 멋지게 요약한 문장도 없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간명하다. 공자의 제자 중궁(仲弓)이 인(仁)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큰 손님 대하듯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如見大賓 己所不欲 勿施於人)고 답했다. 공자의 인(仁)이 곧 현대사회의 인권인 것이다.
탈무드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이방인이 힐렐(Hillel)에게, 내가 한쪽 다리로 서 있는 동안 유대교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건 간단하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 이것이 유대교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것을 실천해 가는 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고 힐렐은 말했다. 그 이방인은 곧바로 유대교로 개종했으며, 힐렐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의 가장 존경을 받는 현인으로 남아 있다.
책 제목을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한 것은 인권이란 단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인권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가 인간다움을 찾으려는 것이다. 공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로 유년기를 보냈다. 힐렐 시대의 유대인 역시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 공자나 유대인도 약자의 입장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권이란 것이다.
우리나라는 식민지와 권위주의 체제, 성장제일주의, 1등주의 등 강자 중심의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커지고, 인권이 유린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향한 저항이 당위성을 가지는 이유이다. 10년 전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어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인권보장체제를 제도화하려 했다. 이를 통해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을 국민 개개인의 주권이 일상적 삶의 공간 속에서 실천되는 규율로 바꿀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인권위원회는 10년 동안 37만 8천372건의 진정을 접수했다. 이 중 권고의 경우 86.4%를 대상 기관이 모두 혹은 일부 수용했다. 인권위는 2005년 육군훈련소 내에서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게 한 사건을 조사하는 등 경찰서 교도소와 같은 어두운 공간의 인권 침해 실상을 파헤쳤다. 억압적 권력을 행사해 왔던 국가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과 사형제의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 대체복무제 도입 등 이 땅에 새로운 인권 좌표를 설정했다. 또 외국인이 당황스러워하는 황인종의 피부색을 뜻하는 '살색'을 '연주황'으로, 다시 초등학생의 진정을 받아 알기 쉬운 살구색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이후 인권위원회가 추락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인권도 후퇴했다는 평가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는 정부가 부담스러워할 사안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했다. 작년 11월에는 상임위원 두 명을 비롯해 직원, 자문위원 등 70여 명이 집단 사퇴했다. 지난 11월 25일 인권위 10주년 행사에는 역대 위원장 4명이 모두 불참했다. 또 방송인 김미화(인권위 홍보대사) 씨는 한겨울에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경찰의 야만적 행위에 대해 인권위가 침묵하고 있는 것을 비난하며 사회를 거부했다. 게다가 현병철 위원장을 비난하는 시위도 있었다.
취임 이후 현병철 위원장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인권' 침해에 가까운 모욕적 비난을 감내하고 있다. 인권위원장의 인권을 걱정할 정도이니, 현재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 수 있겠다.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인간에게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삶의 가치가 있다. 강자의 억압이 정의로 치부되고, 불공정한 경쟁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나락으로 몰고, 다수결이 다수의 횡포로 전용되어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낼 수 없다. 인권위원회가 생명력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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