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사회성 연기금들, 원금보전에 주력할 때

노후대책, 주거, 의료, 교육 등 국민 각자의 재정계획이나 생활안정을 위한 사회금융 적 차원의 제도적인 장치들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그 규모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각종 사회보장성 연기금 및 보험들이 분야별로 만들어져 상당한 규모로 운용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노인요양보험, 주택청약저축, 교육보험, 질병보험, 주택 모지기(mortgage) 등이다. 이를 다시 직업적 분류로 보면 군인, 공무원, 교사 등 분야별로 공제적 기능을 가진 연기금으로 운용되는 등 그 양태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성 사회자본들이 결과적으로는 모두 수익성 위주의 상업적 자본운용시장과 연동하여 그 성과를 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작금의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운용의 철학과 원칙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건 이후 복지제도가 발전한 유럽에서는 정부의 재정위기가 악화되면서 연금의 수혜를 줄이거나 불입의 부담을 늘리게 되어 국가나 사회적 장치에 의존하여 집단적 복지재원을 관리하고 창출한다는 문제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전 세계의 금융자본들이 상당수 미국이나 유럽에서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시장에서 운용되고 있는 각국의 국부펀드나 사회적 연기금들이 어느 하나라도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복지성 사회 금융자본들은 이처럼 변동성이 높고 수익지향적인 재무적 운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이제는 온 사회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얼마전 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2012년 국민연금 운용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가장 중요한 골자는 내년에는 해외 부동산과 해외 주식투자 비중을 늘려 해외 주식은 최대 10.1%, 대체투자는 11.6%까지 늘릴 수 있도록 운용범위를 결정해주었다. 참으로 놀랍고 위험천만한 결정이라고 본다.

지금 전 세계는 미증유의 금융위기와 함께 세계 동시적인 장기불황의 우려 속에 극심한 불안감에 빠져 있다. 도대체 무슨 근거와 확신으로 이 민감한 시기에 온 국민의 미래를 관리하는 대한민국 국민연금이 논리적으로 보아 국내보다 상대적으로 위험한 해외투자에다 불확실성 자산인 주식과 부동산 투자규모를 확대한다는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군인공제회가 향후에는 부동산 투자비중을 낮추고 수익률보다는 안전성 위주로 자산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8조원가량의 자금을 앞으로는 6대4의 비율로 금융자산과 부동산으로 안배하여 관리하겠다고 방침을 밝히면서, 현재 80% 정도의 대체투자 자산을 낮추고 대신 채권투자 비중을 높이고 주식투자도 늘리겠다고 했다. 취지는 그동안 수익성 위주의 자산운용 전략을 앞으로는 다소 완화하겠다는 얘기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 이 정도면 여전히 공격적이다.

참으로 놀랍다. 왜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하는 사회자본을 운용하는 기관에서 이처럼 수익지향적인 자산을 운용해 오고 있는지, 또 이 엄청난 세계적인 경제재난 속에서도 다분히 공격적으로 비쳐지는 자산운영 계획을 견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금이든 기금이든 보험이든 사회자본성 공공적 금융은 그 취지가 원금의 보전이고 영원한 사회적 약속의 이행이다. 만일 수익을 낸다면 절대 원금보전의 원칙 아래 그 취지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획득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조직과 우수한 인재를 가지고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세계 경제위기의 주범이 되어 역사의 비판을 받고 있는 그 유명했던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비참한 결과를 보면서 한국의 복지성 사회자본들이 왜 이런 투자은행식 자산운용을 하려드는지 그 저의를 알 수가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복지성 사회자본은 첫째도 안전이고 둘째도 원금보전이다. 서방경제를 유린하고 있는 작금의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는 반드시 긴 실물경제의 침체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종국에는 에너지, 원자재, 제조원가 등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다시 중국이나 미국, 유럽 등이 돈을 풀어 위기를 막고자 한다면 급기야 또다시 물가상승과 실질소득 저하의 이중고로 서민들의 삶은 고단해질 것이다.

지난 30년 이상 세계는 긴축다운 긴축을 해보지 못하고 급하면 돈만 풀고 금리만 내려와 지금 통화가치나 물가관리는 세계적으로 논의할 가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항상 금융자본의 안정과 눈앞의 문제를 풀기위해 돈을 풀기만 한다면 이것은 결코 미래가 있는 경제운용이 아니다. 세계가 건전한 생산과 검소한 소비와 알뜰한 저축의 진실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 날까지 이 위기는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불씨다. 그래서 연기금 등 복지성 사회자본들은 철저히 안전하게 몸을 낮추란 주문이다.

엄길청/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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