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궁변통항구(窮變通恒久)

십여 년 전, 한국에 초유의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기업이 문을 닫자 수많은 사람이 실직하여 거리로 내몰렸다. 천정부지 오를 줄 알았던 주식이 휴지가 되었고, 지금 주당 백만원이 넘는 기업의 주가가 3만원대로 추락했다.

다급해진 정부에서는 알토란 같은 우량기업을 헐값으로 외국투자기업에 팔아넘겨서 국가부도의 위기를 넘겼다. IMF 시대, 우리들은 너무 몰랐다. 저축된 돈을 금융기관에 맡겨서 일정한 이자를 받는다든지, 아니면 토지나 건물, 주식을 사서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좀 더 많은 기대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금융시스템의 전부인 줄 알았던 한국인에게 IMF의 처방은 너무나 가혹했다.

일본이 당한 잃어버린 10년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그 피해가 엄청났다. 2차 세계대전 후 제조업의 성공으로 재도약한 일본이었다. 그러나 제품판매대금으로 입금된 돈이 얼마 지나지 않아 월가 등 금융시스템의 귀재들이 판치는 제품수입국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시작하자마자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그나마 축적된 자본이 있어서 한국처럼 IMF 외환위기는 당하지 않았다.

역경(易經)의 계사전(繫辭傳)에 의하면 궁(窮)하면 변(變)해야 하고 변하면 통(通)하고 통하면 항구(恒久)한다고 했다.

궁(窮)해진 사람들이 변(變)하기 시작했다. 맨주먹으로 길거리에 내쳐진 중소업체 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쫓겨난 샐러리맨이 악전고투 끝에 창업에 성공했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피눈물을 쏟으며 재기하여 가족 재결합에 성공했다. 변하니 통하기 시작하는 징조가 곳곳에 나타난 것이다.

임진년(壬辰年), 420년 전에는 왜란이 발생했고 근세엔 한국전쟁이 있었던 해다. 왜란 후 7번째 맞이한 임진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어수선하다. 작년에 발생한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총선과 대선이 있고 세계 주요국의 지도자가 교체될 예정이다.

물속에 있던 흑룡(黑龍)이 승천하는 해이니 길(吉)할 것이라지만 마냥 길할 것만을 바랄 순 없다. 승천하지 못한 용은 이무기에 불과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한 청춘들이 길거리에 넘쳐나고, 골목상권에까지 거대자본이 침투하여 갈 곳 잃은 영세 상인의 한숨소리가 끊임없이 분출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물은 변해야 오랫동안 지속(恒久)할 수 있다고 했다. 궁하기에 포기하지 말고 변화를 추구하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있다. 궁함을 기회로 삼아서 변화를 추구하자.

정재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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