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같은 삶의 역경 딛고 '인생 2막' 연 김윤권 씨

쉰 살에 의사 국가시험 합격…"움츠린 젊은이들에 희망 됐으면"

올해 의사국가시험에서 쉰 살의 나이로 합격한 영남대 의대 출신 김윤권 씨의 영화 같은 인생 역정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 의사국가시험에서 쉰 살의 나이로 합격한 영남대 의대 출신 김윤권 씨의 영화 같은 인생 역정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의대 진학 후 찾아온 방황, 14년 만의 졸업, 사업가 변신, 부도, 신용불량자, 파산, 그리고 쉰 살에 의사국가시험 합격.'

김윤권(50'경산시 중방동) 씨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 같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로서의 안정된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청년 시절 방황으로 호된 인생역정을 겪어야 했다. 사업실패로 쌓인 빚 때문에 현재도 기초생활수급자 처지. 하지만 힘든 역경 속에서 만학(晩學)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인생 2막을 열었다.

7살 딸과 6살 아들을 둔 가장인 김 씨는 최근 발표된 제76회 의사국시에서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의사시험에 합격해 정말 기쁩니다. 그동안 불평 한 번 없이 믿고 응원해 준 아내와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1982년 청운의 꿈을 안고 우수한 성적으로 영남대 의과대학에 입학한 그였지만 대학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생각에 의사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답답했다"며 "뭔가 다른 삶의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느라 공부도 소홀히 하고 시간을 어영부영 보냈다"고 추억했다. 등록을 24번이나 거듭하는 방황을 했고 1996년 2월에 졸업했지만 의사국시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대학교 다닐 때는 집이 넉넉해서 먹고살 걱정은 평생 안 하고 살 팔자려니 했습니다. 그래서 별로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의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그는 의대 졸업 후 휴대폰대리점 등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도를 맞았고 2004년에는 채무불이행으로 신용불량자가 됐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을 유지하던 2008년 개인파산을 신청하기까지 이르렀다. 그 와중에 선친을 여의고 모친까지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2009년 가을, 김씨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의사국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의 바람처럼 의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굳힌 것. 그리고 1년 동안 영남대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공부에 매달렸고 2010년 제75회 의사국시에서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의사국시 제도 때문에 실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지난해 8월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런 역경 끝에 실기시험까지 합격해 의사면허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조만간 지역의 한 요양병원으로 출근하게 된다. 이제 그는 요양이나 실버의료 분야 전문의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다.

"이 나이 먹도록 가족부양도 제대로 못 하고 산 것이 정말 부끄럽지만,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에서 좌절하고 움츠러든 젊은이들에게 제 이야기가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간절히 원하고, 절박하게 매달리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대학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것을 비롯해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으니 이제 갚으면서 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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