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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침묵-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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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유월의 어느 무더운 날 전시를 끝내고 수덕사로 향했다. 일주일을 기약하고 절벽 같은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났다. 전시는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만큼 그림을 객관화하는 시간으로 에너지를 소비시킨다. 이 때문에 전시가 끝나면 화가들은 내적 명상의 기회를 갖기 위해 자주 잠수를 탄다. 다음 작업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나는 감정의 흔들림이 있을 때나 너무 앞서가고 싶을 때 침묵하는 사소한 중독이 있다. 침묵은 곧 '비움'이다. 눈이 반짝 깨지는 숲이라면 자연의 솜털 하나하나 침묵으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수덕사에서 진화를 꿈꾸며 자연과 함께 침묵하였다.

천 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충남 예산 수덕사는 인연 따라 간 곳이지만 잠수 장소로 훌륭했다. 그곳은 1950년대 한때 이응로 화백이 생활했던 수덕여관이 있어 화가라면 누구라도 머물고 싶어지는 곳이다. 깊은 자연 안에서 침묵하며 체득되는 진리는 많았다. 침묵은 애쓰지 않아도 느닷없이 진실이 받아들여지는 행운을 선사한다. 침묵하면 세상에 대해 끝없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침묵은 참으로 불편한 면도 많다. '조갑증'도 많이 난다. 자꾸만 설명을 하고 싶어진다. 잘난 체도 하고 싶어진다. 침묵 당하는 대상도 힘들어 보인다. 인내를 붙들어 매달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침묵은 진실을 확신하고 있을 때 성공적이다. 무위의 공간에 있다는 것은 상대적인 방어 기제가 필요 없으므로 참 편안하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한 것 같다. 침묵의 양면성은 스스로가 마음에서부터 만들어 내는 가 보다.

나는 날이 새면 강물 따라 산책을 하거나 해가 지면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그리움도 들여다보았다. 침묵의 시간 동안 문득문득 고개 들 때마다 산은 이미 내 안에 들어앉았다. 산은 겨우내 나무와 풀들의 뿌리를 품어 봄을 잉태하고 여름을 꽃피게 한다. 그 꽃들과 푸른 나무들은 다시 산을 포옹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산은 또 겨울을 기다리는 그리움에 빠진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단풍 꽃들이 무심하게 피다 가고 오가는 이 아름다운 삶들의 질서에 저절로 경외감이 든다. 이는 절벽 같은 침묵을 할 때만 발견된다. 아는 지인의 경험담이다.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한밤을 침묵으로 꼬박 새웠다 한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밤새 많은 대화를 나누어 즐거웠네"라며 헤어졌다 한다. 충(冲)! 이 텅 빔이여!

언어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소통거리이다. 하지만 배려 없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책임 없는 말들은 오히려 진실을 상처 들게 한다. 불편한 진실 앞에서도 침묵할 수 있다면 자연과 더불어 우주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유혹 없는 무심한 수덕사의 나무와 풀, 물들처럼 진실을 담은 침묵하는 그림은 충만함으로 의지 된다. 귀때기가 얼얼했던 이 겨울도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침묵하며 대지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인간은 자연처럼 올올히 침묵할 수 없지만 침묵을 선택할 수는 있다.

변미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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