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렸다가 일정기간 뒤 돈을 갚고 물건을 찾아가는 전당포.
전당포의 현실과 그 속에 비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은 서글프다. 한때(10여 년 전) 400∼500곳에 이르던 대구지역의 전당포가 현재는 100곳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명 포털사이트에 '대구 전당포'라고 검색을 하면, 33곳이 뜬다. 그것마저도 일부 전당포는 상호만 있을 뿐 전화번호가 없어서 문의조차 불가능했다.
그나마 연락이 닿는 전당포마저도 영업이 힘들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신용카드, 대부업체 등이 성장하면서 전당포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전당포를 찾는 서민들은 있다. 그들의 발길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묻어난다. 집안의 가보, 결혼 예물, 부모에게 받은 선물, 죽은 배우자의 패물 등 살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품들이 전당포를 찾아온다. '한 달 내로 꼭 찾으러 오겠습니다'는 약속이 지켜지는 경우는 20∼30%에 지나지 않는다. 카드연체, 대부업체 빚 등으로 경제적으로 '그로기'(권투에서 KO 직전의 상태) 상태에서 전당포를 찾기 때문에 다시 찾아갈 확률은 그만큼 낮은 것이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이후 15년 동안 악화된 부익부 빈익부, 즉 경제적 양극화의 폐혜는 전당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구구절절한 사연
전당포에 저당잡힌 물건엔 삶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슬픔이 묻어 있다. 그 물건들은 주인이 보살펴주지 못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에 맡겨졌다가 결국은 또다른 곳으로 처분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수십 년 전당포를 했던 주인들조차 그 안타까움에 당분간(1개월 정도) 처분을 미룰 때도 있다.
직장을 잃고,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다 쪽박을 차고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이차도(가명'40) 씨는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고려청자를 들고 전당포를 찾아갔다. 수천만원(3천만∼5천만원)을 호가하는 이 고려청자는 진품으로 감정을 받았지만 전당포들은 쉽사리 이 물건을 받지 않았다. 대구시내 전당포 10여 곳을 돌아다니다 돈을 빌리는 데 실패하고, 겨우 유물까지 취급하는 전당포 한 곳을 찾아 1천만원을 빌리고 가보(家寶)를 맡겼다. 물론 약속한 기간 내에 찾아가지 못했다.
전당포에 맡겨진 결혼식 패물은 흔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사연들을 품고 있다. 결혼해서 별 탈 없이 잘살면 이런 물건들이 전당포에 올 일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자영업을 하는 이들에겐 결혼식 패물이 처분 1순위. 특히 금반지, 고급 시계 등은 경제적 태풍이 몰려올 때 제일 먼저 날아간다. 결혼 패물 350만원어치를 전당포에 맡긴 이순금(가명'48'여) 씨는 "아무리 어려워도 시어머니가 해 준 금반지, 금목걸이 등은 20년 넘게 잘 간직했는데 이제는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몰려 어쩔 도리가 없다"며 "다음달 말까지가 기한인데 다시 찾아오기가 힘들 것 같다"고 눈물을 떨궜다.
부부가 함께 집안에 있는 온갖 보석을 다 처분하러 온 경우도 있으며, 조부가 해준 순금 10돈짜리 돌반지나 목걸이를 1년도 되지 않아 전당포에 맡기거나 금은방에 되파는 젊은 부부들도 적잖다. 심지어는 집안에서 나이든 부모의 패물을 몰래 훔쳐서 전당포에 들고 오는 불효자들도 있다.
◆현실 굴복, 전당포도 변신
좁고 어두침침한 방에 철제 창문 그리고 꽉 닫힌 비밀금고 등이 떠오르는 전당포. 최근 들어 몇몇 업소들은 시대에 맞게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변신의 선두주자는 명품 전당포다. 대구 동성로에도 이 명품 전당포가 성업 중이며, 주로 여성들이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핸드백 등을 맡기고 돈을 빌려갔다 다시 찾아간다. 몇몇 업소는 '전당포'라는 상호명 대신 '중고 명품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명품 가방을 여러 개 갖고 다니는 일부 여성들은 수시로 이 명품 전당포를 이용한다. 이꽃님(가명'22'여) 씨는 "명품 백의 가격이 100만원을 넘다보니 잠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서슴없이 백을 맡기고 돈을 빌린다"며 "실제 귀금속보다는 가방이나 핸드복이 더 고가"라고 털어놨다.
대구시 남구 안지랑네거리에 위치한 '하트 전당포'는 귀금속 전문 전당포다. 귀금속판매업(금은방)을 하면서 동시에 전당포업도 하고 있는 형태다. 그 때문에 다른 물건은 거의 취급하지 않으며, 주로 고가의 시계나 귀금속만을 다룬다. 특히 시계는 육안으로 봐도 감정가를 판정할 정도로 전문가다. 주인 권오준(58) 씨는 "귀금속업을 하면서 손님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하다 보니 전당포업까지 하게 됐다"며 "대개 결혼 패물 등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의 각종 사연들을 들어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조금 더 처분기간을 늘려주고, 시세보다 조금 더 낫게 해주려 한다"고 말했다.
권 씨에 따르면 전당포 영업은 법정이자를 받고, 그 물건을 맡아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00만원짜리 물건을 맡아서 80만원을 빌려준다면 일정기간 뒤에 원금(80만원)에 이자(3부 내지 4부)를 얹어서 돌려받고 저당잡힌 물건을 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저당잡힌 물건의 이자가 원금을 넘어섰을 때는 처분을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당포 영업기밀도 있다. 작은 사고는 괜찮지만 큰 사고는 절대 금물. 작은 사고란 물건을 잘못 봐서 5만∼10만원 정도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를 말하고, 큰 사고란 아예 짝퉁 물건을 진품 가격을 주고 맡는 것이다. 큰 사고는 보통 보름간 영업이익에 해당할 정도로 막중한 손해를 입힌다고 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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