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더러운 세상에 날 던져놓은 엄마도 참 원망스러웠죠. 방법은 하나였죠. 엄마와 이 구질구질한 세상을 떠나버리는 것…. 숨이 막히지 않게 3분마다 가래를 빼내줘야 했어요. 아무것도 할 게 없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10분 동안 견디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옆방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음악이었죠. 정말입니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겠는데 난 거기서 오케스트라를 봤습니다.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먼 훗날의 나도 봤습니다. 구원이었죠. 위로였고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휘자가 되었습니다.(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대본 중에서)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음악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꿈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 시향 첫 공연을 합창교향곡으로 택한 주인공 강마에(김명민 역)는 공연을 앞두고 3일 연속 쏟아진 폭우 때문에 어려움에 봉착한다. 합창단이 올 수 없다는 연락과 함께 공연 20분 전인데도 객석은 반도 차지 않는다. 수재민조차 이 상황에 공연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방해하고 그들과의 몸싸움 중에 강마에는 오른팔을 다친다.
강마에는 수재민 대표에게 아들을 데리고 있다며 빵 값 대신 공연을 보라고 제안한다. 교향곡은 시작되고, 화면으로 공연을 보는 수재민 대표의 회상을 통해 강마에의 과거가 선율과 함께 오버랩된다. 공연은 대성공으로 끝난다. 객석은 환호성으로 가득 차고 수재민 대표도 감동한다. 내 기억에는 이 드라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차가움과 따뜻함, 합리성과 무모함이 공존하는데다 괴팍스러움까지 갖춘 강마에의 아픈 과거가 이 부분에 나온다. 고통스러운 강마에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그 상처를 이겨나간 계기가 바로 먼 훗날 지휘자가 된 자신을 만나는 체험이다.
이처럼 꿈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강마에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그 마음, 선생님인 내가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로 그 마음, 드라마를 통해 나는 나를 들여다보았다. 언제나 부끄럽고 부족했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왜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했을까? 그때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어른이 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오히려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난 깨달았다. 핑계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생각한 것이라고. 이겨나갈 생각보다는 도피할 마음이 더욱 큰 것이었다고. 아마 그때 내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다시 새로운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을 게다.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힘들지만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내가 대견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어떤 장애가 와도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 어차피 현재보다 더 나은 현재는 없다고 믿으니까. 내가 꾸는 이상향은 지금 내가 걷는 길에 충실한 데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걷는 길은 내가 꾸는 꿈을 걷는 길이다.
아직도 나는 확신하기 어렵다. 내 삶의 공연이 엉망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다. 지금 내게 보이는 것은 내가 걸어가는 길의 풍경이다. 관객이 얼마 없어 힘이 나지 않더라도, 악기 상태가 안 좋더라도 나는 내 공연을 지휘할 것이다. 여전히 부끄러운 부분이 많지만, 내가 신이 아니기에 완벽할 순 없다. 다시, 봄이다. 시간은 어김없이 다음 계절로, 다음 시간으로 흐른다. 제발 내가 만드는 공연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 행복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다면? 그것만이 현재 나의 꿈이다. 나는 '꿈'에 미쳤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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