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에서 여자 생도의 수석 졸업은 지금껏 넘볼 수 없는 성역이었다. 첫 여생도가 입학한 1998년 이후 수석 입학은 여러 번 있었지만 수석 졸업은 늘 남자 생도 차지였다.
하지만 올해 대구 출신 윤가희(25'여) 씨가 이런 불문율을 깼다. 가희 씨는 24일 육군사관학교 68기 졸업식에서 동기생 198명 중 수석을 차지해 대통령상을 받은 여생도 1호가 됐다. 덕분에 가희 씨의 부모는 군 장성들과 나란히 본부석에 앉아 졸업식을 지켜보는 영광을 누렸다.
가희 씨의 어릴 적 꿈은 영어 교사였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에 재능을 보였다. 일찌감치 영어를 전공으로 택해 대구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우연히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군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 국제교류에 전문 능력을 발휘하는 군인을 꿈으로 삼은 것.
바라던 대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공부는 자신 있었지만 각종 체력 검정은 늘 힘에 부쳤다. 교육과정은 여자라고 해서 봐 주지 않았다. 험난한 군사훈련은 갓 교복을 벗고 훈련복을 입은 가희 씨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1학년 때 받은 기본군사훈련 중 40㎞ 철야행군, 산악종합행군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렇게 많이 걸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늘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릴 때는 머릿속이 텅 비며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어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힘든 훈련생활도 점차 적응하게 됐고, 오히려 즐기는 단계에 올라섰다. 그 결과는 수석 졸업. "이론 교육은 여생도가 우수한 성적을 받지만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군사훈련은 남자 생도가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는 게 이전까지의 고정관념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달라졌습니다."
아버지 윤명진(53'대구 북구 읍내동) 씨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지낸 4년 동안 단 한 번도 가족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분명 남자 생도들보다 체력에서 열세였을 텐데 인내와 끈기로 군인의 자질을 인정받은 딸이 자랑스럽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가희 씨의 남동생인 준혁(23) 씨도 이날 누나와 함께 졸업하며 육사 최초로 남매 동반 졸업 기록도 세웠다. 이들 남매는 2008년 육사 최초로 오누이 동시 입학 기록을 세웠다. 가희 씨가 육사 입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두 번의 실패를 감수하면서 동시에 입학한 것. 준혁 씨는 "중학교 때부터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이 되는 것이 목표였기에 원하던 꿈을 이뤘다"고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 윤 씨는 "남매가 앞으로 군인의 길을 걸으면서 국가에 보탬이 되면서도 개인의 삶 역시 늘 행복하게 가꿔 나가길 바란다"며 흐뭇해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윤 씨 남매는 이달 28일 임관식에서 소위 계급장을 받고 초등군사 교육을 이수한 뒤 전투병과의 야전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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