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면 앞만 보고 가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 그러다가 운전석을 자의든 타의든 양보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느새 차창 밖에 시선을 두는 자신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는 내 속으로 스며든다. 바로 이틀 전 노란 군무를 추기 시작한 개나리를 보면서 봄이 곧 만개할 것이란 사실에 몸이 떨렸다. 색색의 얼굴을 치켜들기 시작할 꽃과 마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세상이 내 것 같아진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마음에 온기가 퍼진다. 봄이 오면 이렇게 모두가 마음과 얼굴의 빗장이 풀리고 느슨해진다. 잊지 않고 돌아와 준 계절 앞에 감사하게 되고, 자연이 주는 현란한 색의 마법에 감탄하게 된다. 머릿속에 각종 색채어와 형용사가 뒤엉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3월이 되면 문득 프랑스로 가고 싶어진다. 프랑스에서는 3월 시인들의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시인들의 봄' 축제는 프랑스의 새로운 문화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1999년 자크 랑 전 교육부장관의 아이디어로 시작돼 매년 3월에 1주일가량 열리는 이 시 축제는 프랑스 전 국민이 모두 참여하는 유명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 축제 기간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시를 볼 수 있고 애드벌룬, 버스에 시를 적어 놓고 모두가 낭송한다고 한다. 프랑스는 시에 대한 애착이 꽤 강하다. 프랑스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에도 레지스탕스들에게 작전 개시를 알리는 암호로 폴 베를렌의 시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시로 말하고 듣고 보는 시의 세계가 펼쳐지는 프랑스의 3월! 그 시간, 그 장소에서라면 머릿속에 깜빡이는 단어들을 그저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것 같다.
멀리 갈 여건도 안 되고 갈 시간도 없다고 봄의 감동을 내려놓기는 아쉽다. 프랑스를 대신해서 올해는 팔공산으로 나서볼 계획이다. 이곳에 한국 현대시 육필 공원 '시인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한 돌 수집가가 20여 년간 고서점을 뒤져 육필시를 찾아내고 그중 23편을 선정해서 바위에 새겨 놓은 이곳에는 한용운, 윤동주를 비롯해서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시인 정호승과 안도현의 시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팔공산 올레길 1코스에 마련된 '시인의 길'은 시인들의 남다른 서정이 봄의 따뜻한 기운과 몹시도 닮아 있다. 봄과 봄이 만나는 길목! 그곳이 대구에 있다니 설레지 않는가.
'생각이 막힐 때 시를 읽으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혁신적 CEO의 대표주자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시 읽기를 강조한 CEO로 유명하다. 습관적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그는 '시 읽기'를 꼽았다. 이렇듯 시는 위대하다. 절망의 삶을 구원으로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하고. 내 인생의 지향점, 평생의 화두가 시 속에 숨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한 편의 시로 남고 한 편의 시는 또 한 구절로 남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를 쓰는 것은 밤과 낮을 쪼개고, 자신을 쪼개서 쓰는 고난의 시간이라 믿는다. 하지만 시인들은 말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 그 자체가 바로 시인의 마음이라고. 또한 누구나에게 마음 깊숙이 시라는 덩어리는 이미 들어 있다고.
하지만 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시를 읽는 일도 쓰는 일도 어쩐지 머뭇거리게 된다. 좋은 시를 찾는 것은 더욱 난감하다. 이럴 때는 대구문화재단에서 보내는 서정시 메일을 시청하는 것도 쉬운 방법이다. '서정시 3편을 외우자'는 타이틀 아래, 엄선된(?) 시를 메일로 보내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문학의 도시였던 대구를 낭만적인 도시 이미지로 부각시키기 위해 시낭송, 시 퍼포먼스, 시 노래 등 대구를 서정시로 물들이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도 펼쳐질 예정이란다. 시와의 만남이 잦아진다니, 프랑스로 가야겠다는 계획을 당분간 미뤄도 좋지 않을까 섣부른 희망도 품어 본다.
시가 내게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하는 이 계절. 벼락 치듯 나를 전율케 하는 시인의 문장으로 봄 친구 '시'(詩)를 두 팔 벌려 맞아 본다. 함께하자고 하면 주저할 텐가.
성교선/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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