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유니폼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 스포츠 유니폼은 소속감과 단결력을 나타내는 상징물에 불과했다. 그러다 스포츠과학이 접목되면서 유니폼은 기능성 옷으로 거듭났다. 요즘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은 단순한 운동복이 아니다. 경기력 향상에 필요한 첨단 기능이 융합되어 있다. 최근에는 스포츠 유니폼이 '패션'을 입고 있다. 또 스포츠 마케팅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기능성을 넘어 섹스 어필과 마케팅의 수단으로 진화한 유니폼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촌티를 벗고 기능을 입다
1950~1980년대 국내 스포츠 유니폼은 기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 그대로 선수들의 복장을 통일시키는 기본적 역할만을 수행했다. 색상과 디자인도 '허접'해 지금 보면 촌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통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처음 밟았던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은 저급한 염색기술로 인해 비가 오면 염색물이 빠질 정도였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국내에 스포츠과학이 본격적으로 싹트면서 스포츠 유니폼은 기능성 의류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후원하는 나이키는 2년에 한 번꼴로 새 유니폼을 내놓고 있는데 2002년은 유니폼 과학이 혁신적으로 진보한 해로 꼽힌다.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나이키는 '쿨 모션'(cool motion)이라는 개념을 도입, 두 겹으로 유니폼을 만들어 체온 조절과 통풍 기능을 향상시켰다. 2004년에 출시된 유니폼은 무게가 185g에서 155g으로 줄어들었다. 또 박음질이 아닌 '제로 디스트랙션'(zero distraction)이라는 접착공법으로 천을 이어 붙여 천을 꿰맸을 때 생기는 솔기로 인한 피부 쓸림 현상 등을 방지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유니폼은 '스피어 드라이'(sphere dry)라는 신소재로 제작되어 '숨 쉬는 유니폼'으로 불렸다. 옷과 피부 사이의 공기 유입량을 늘려 땀의 빠른 흡수와 건조, 통풍성 등을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드라이 핏'(dri fit) 소재로 만든 2010 남아공월드컵 유니폼은 무게가 140g에 불과했다. 게다가 무더운 남아공에서 경기를 하는 특성을 고려해 수분을 보다 빨리 증발시켜 선수들이 쾌적한 상태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당시 대표팀 유니폼의 땀 흡수력은 일반 면셔츠에 비해 100배 정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 출전했던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선수들은 촘촘한 홈이 파인 유니폼을 입었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골프공 표면에 작은 홈(딤플)을 만든 것처럼 표면에 미세한 홈을 넣은 유니폼이었다. 이달 14일 공개된 2012 런던올림픽 수영 국가대표팀 수영복에는 '에너지 리턴'(energy return)이라는 신개념 기술이 적용됐다. '에너지 리턴'은 신축성 강한 소재가 늘어났다 줄어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동을 스피드로 바꾸어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 실리콘 밴드 대신 나노 테이프를 사용해 피부와의 밀착력도 높였다.
◆기능성을 넘어 섹시 코드로
한동안 유니폼은 헐렁한 형태가 대세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유니폼은 선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선수들의 탄탄한 몸매가 드러나면서 유니폼은 섹시 코드의 기능까지 갖추게 됐다. 프로배구 선수들의 유니폼은 멋스럽다. 군살 없이 매끈한 선수들의 몸매가 적당히 드러나도록 디자인된 유니폼은 패션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프로배구가 인기 겨울 스포츠로 자리 잡은 이면에는 한층 섹시해진 유니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유니폼이 타이트해진 표면적인 이유는 경기력 향상이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성 상품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자프로농구 출범 초기, 선수들의 유니폼은 에어로빅 의상을 방불케 할 만큼 몸에 딱 붙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는 때아닌 뱃살 빼기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남성 관객들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으로 제작된 일명 '쫄쫄이 유니폼'은 선수들의 반발과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
노골적으로 여자 선수들에게 치마 유니폼을 권하는 종목도 있다. 지난해 세계배드민턴연맹은 타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고 스폰서 유치에 도움을 받기 위해 여자 선수들에게 미니스커트 유니폼을 입히는 규정을 만들었지만 선수들의 반발로 시행을 무기 연기했다. 지난해 국제복싱연맹도 런던올림픽 때 여성 복서들에게 치마를 입히는 방안을 검토하다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여자선수 유니폼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회장은 "여자 선수들 유니폼은 좀 더 몸에 달라붙게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구설에 올랐다. 또 체조'육상'비치발리볼 등 일부 종목의 여자선수 유니폼이 갈수록 섹시해지고, 테니스의 경우 여자선수 유니폼으로 미니스커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흥행을 노린 남성 중심주의 때문이라는 비난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마케팅 첨병 역할
스포츠 인구가 늘면서 유니폼을 활용한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유니폼 마케팅이 가장 활발한 종목은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프로야구다. 야구 유니폼은 마니아들의 중요 수집 품목이 되었으며 일상생활에서 패션 아이템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프로야구 구단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유니폼 마케팅을 펼치는 곳은 롯데다. 롯데 선수들이 경기 때 입는 유니폼은 홈과 원정 유니폼, 선데이 유니폼, 챔피언 유니폼, 밀리터리 유니폼, 유니세프 후원 구단으로 지정되면서 제작한 유니세프 유니폼 등으로 다양화되어 있다. 롯데는 이들 유니폼을 활용해 팬들의 관심을 끌고 매출도 늘리는 이중효과를 누리고 있다.
롯데뿐 아니라 삼성라이온즈, 두산, SK, 넥센 등의 구단들도 향수를 자극하는 올드 유니폼을 마케팅에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특히 두산은 여성 관중이 늘어나자 이들을 겨냥해 분홍색이 강조된 유니폼을 제작해 판매하는 등 유니폼 마케팅에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니폼 마케팅은 프로야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대구FC는 올 6월 10주년 기념 유니폼과 티셔츠를 제작해 선보일 예정이다. 대구FC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디자인 단계부터 시민들을 참여시켜 10주년 기념 유니폼을 만들 계획이다.
유니폼 마케팅 붐이 일면서 스타 선수의 유니폼이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여자농구연맹이 개최한 옥션 경매에서 최윤아 선수의 국가대표 유니폼은 최고가인 83만5천900원에 낙찰됐다. 또 이경은 선수의 팀(KDB생명) 유니폼도 47만6천900원의 높은 가격에 주인을 만났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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