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돈 쓰고 욕먹는 '무상보육'

주변에 어린이집을 다니는 영유아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주는 보육료도 못 챙기면 바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다. 지난 3월 만 0~2세 대상 영유아 무상보육을 실시한 이후 2개월여 만에 이 연령대 어린이집 등록 아동 수가 28.9%(16만6천63명) 증가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3, 4월) 증가율보다 2배 높다.

특히 만 0세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지난 4월 말 어린이집에 다니는 0세는 10만3천459명으로 작년 4월보다 33.3% 증가했다. 이는 3월부터 보육료 지원 체계가 가정 양육보다 시설 보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바뀌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부모 소득에 관계없이 월 28만6천~39만4천원을 주지만, 집에서 키울 경우 차상위 계층에 한해 월 10만~20만 원의 양육 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민간어린이집에서 사건 사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저질 급식과 식중독, 체벌, 그리고 국가보조금 빼먹기와 리베이트 수수…. 어린이집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일부 원장들의 비양심적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에는 특별활동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거나 국가보조금을 부당하게 챙기는 등 비리를 저질러온 수도권의 어린이집 180여 곳이 경찰에 적발됐다. 어린이집 설립이 인가제에 묶여 신규 개설이 어렵게 되자 권리금 수천만 원에 어린이집 운영권이 거래되기도 한다. 여기에 자녀의 이름을 어린이집에 빌려주고 돈을 받는 부모들도 생겨나고 있으니 복마전(伏魔殿)이 따로 없다.

보육의 질을 좌우할 보육교사들의 처우는 어떤가? 대부분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하루 10시간 정도 아이들을 돌보며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얼마 전 민간어린이집 원장들이 집단 휴원을 통해 정부와의 협상을 이끌어냈을 때, 보육교사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상황이 집단 휴원의 명분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또 원장들이 먼저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고 비판했다. 대구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원장들은 정부에 보육료 현실화, 어린이집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반성해야 한다. 경력에 비해 낮은 임금을 주고, 심지어 교사들에게 급식(점심)을 많이 먹는다고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성을 띠어야 할 보육 서비스가 영리 추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민간어린이집 원장들의 주장처럼 현실에 맞지 않는 보육료와 지나친 규제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영유아 무상보육은 보편적 복지 정책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당정은 재정의 절반 이상(50~60%, 서울 80%)을 감당해야 할 지방정부와 협의 없이 실시하는 바람에 지방정부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만약 중앙정부가 국비 추가 지원을 미룰 경우 8, 9월쯤이면 상당수 지방정부에서 돈이 없어 보육료 지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유아 무상보육은 '돈 쓰고 욕먹는 정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준비 없이 강행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 계획에 없던 0~2세 무상보육을 실시하는 바람에 보육료 지원 체계가 가정 양육보다 시설 보육(어린이집)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결국 어린이집 수요가 급증했고, 젖먹이까지 어린이집에 등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 일부 민간어린이집과 부모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겹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그렇다고 영유아 무상보육을 중단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정책을 안착시켜야 한다. 민간어린이집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보육교사 처우 개선 등을 통해 보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보육료 지원의 경우 전액 국비로 하거나 여의치 않다면 국비 부담을 늘려야 할 것이다. 또 보육료 지원 방법의 다양화 등을 통해 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국가는 서비스 비용 지원, 현금 지원, 세금 감면 등 여러 방법으로 지원 방안을 찾고 전업 주부, 일하는 주부 등 부모 특성에 따라 보육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각종 복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많은 고민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영유아 무상보육에서 많은 수업료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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