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땀으로 눅눅해진 옷과 답답한 공기에 지친 몸을 일으킨다. 방안을 가득 메운 더운 공기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에어컨 스위치를 누른다. 당장 찬물에 얼굴을 적시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다. TV 뉴스에서는 더위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폭염 속으로 외출할 생각에 겁이 더럭 난다.
이런 날씨에서는 걷는 일 자체가 고문이다. 난 후끈 달궈진 도로 위에서 정신없이 택시를 찾는다. 택시 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아, 살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택시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다시 숨이 턱 막힌다. 사무실까지 걸어서 단 몇 분 거리지만 공사장과 자동차 열기에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걷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얼음이 가득한 냉장고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야 천국의 기운을 느낀다.
해마다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지는 것 같다. 작년 여름보다 올여름이 더 더운 것 같고, 내년 여름은 올해보다 더 더워질 듯하다. 거리는 한산하고 사무실이나 식당, 가정집에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에어컨이 건물마다 돌아가고 걸어다니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훨씬 많다 보니 좁은 골목은 열기로 숨쉬기가 어렵다. 신경은 예민해지고 몸은 처져 간다. 요즘 같은 더위에는 공원보다는 시원한 차 안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심지어 연인들도 여름에 가장 많이 이별한다고 한다. 손을 잡으려다 싸울 정도로 더위에 예민해진 탓일 것이다.
내가 여름에 시비를 건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더운 걸까. 달리 생각해보면 더위가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여름을 괴롭혔구나 싶다. 조금만 더워도 눌러버리는 에어컨 스위치,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컴퓨터와 TV, 수시로 열고 닫는 냉장고 등등. 우리는 이기적인 즐거움을 위해 여름에 끊임없이 시비를 걸고 있었다. 에어컨 한 번 틀 때 소모되는 전력량이 선풍기 30대를 동시에 돌리는 것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내 방안은 북극처럼 시원했지만, 거리의 열기는 더 심해졌다. 여름이 우리를 덥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더위로 몰아가면서도 여름 탓을 하고 있었다. 에어컨과 선풍기,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컴퓨터와 얼음을 찾는다며 하루에 몇 십 번 열고 닫는 냉장고로 여름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혹 여름이란 녀석, 사람들이 그늘에 모여 쉬며 이야기를 나누고 수박을 나누어 먹던 그 시절이 그리워 더 열을 내고 있는 걸까?
김하나(배우'극작가)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차문 닫다 운전석 총기 격발 정황"... 해병대 사망 사고 원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