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길모퉁이. 할머니 한 분이 플라스틱 통에 갓난 강아지들을 담아놓고 팔고 있다.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강아지들을 들여다보며 지나는 사람마다 '예쁘네!'라고 입을 댄다. 어떤 부티 나는 아줌마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네일 아트 치장이 요란스런 손가락으로 강아지를 한 마리씩 쿡쿡 찌르며 값을 묻는다.
"이놈은 얼마요?" "요놈은 얼마요?"
계속 값만 묻고 강아지들을 요놈, 조놈 해가며 찝쩍거리기만 하자 은근히 부아가 난 할머니가 들으랍시고 대답했다.
"요놈(수캉아지)은 만 원이고 조년(암캉아지)은 칠천 원이지."
비록 미물이라 해도 이놈, 요놈 '손가락 이름'으로 부르면 장터에서 강아지 파는 속 좋으신 할머니의 귀에도 거슬릴 게 당연하다.
대통령 경선 후보를 '년'이라 지칭한 남자 국회의원의 쌍말 시비에 이어 그저께는 민노총이 주최하는 행사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원수', 박근혜 후보는 공천 헌금 '처먹은 년'이란 욕설이 나왔다. 그동안 임수경 등 잇단 좌파 성향 인물들의 막말 파문에 이어 또 한 번 그쪽 사람들의 됨됨이를 드러냈다. 더구나 유감이니 사과니 하고 꼬리 내리며 구시렁거린 이종걸 의원의 변명은 쌍말보다 더 치졸하다. '그년'이 '그녀는'의 준말이라는 건 어느 나라 문법인가. 세종대왕이 더위 잡수실 지경이다. 오타라고도 했다. 그것도 거짓말이다. '그녀는'을 찍으려 했다면 그녀 다음에 'ㄴ'을 찍은 뒤 'ㅡ'와 'ㄴ'을 계속 찍어야 하는데 그냥 '년'으로 끝난 건 '년'으로 쓰고 난 뒤 'ㅡ'도 'ㄴ'도, 또 다른 옆자리 문자판의 그 어느 글자도 안 찍었다는 걸 말한다. 애초에 다음 문자는 찍지도 않았으니 오타가 아닌 것이다. 지금 그 남자의 궁색한 변명을 검증하자는 게 아니다.
'그년' 등 막말 시비를 놓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은 일부 좌파들의 체질적인 무교양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지금 정치권 주변에 정말 '그년' 소리 들어야 할 여자와 '그놈' 소리 들어도 싼 남자가 그들밖에 없을 것이냐는 상호 성찰이다. 막말 이종걸 의원이 소속한 민주통합당의 당직자는 '미디어 오늘'이란 언론노조가 발행하는 비평매체 여자 기자를 성추행했다가 해임됐다. 그것도 쉬쉬 숨기다가 지난 주말 정규 언론에서 터지고서야 시인했다. 이종걸 님에게 그런 자기 당(黨) 남자를 어떻게 부르는지 공개적으로 물어보자. '그놈'이라고 할 거요, '그님'이라고 할 거요?
부패 저축은행 회장을 담당한 교도관은 교도소 안에서 캐낸 수사 기밀을 역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미주알고주알 비밀 보고해 왔음이 드러났다. 이 경우 그 교도관은 '그놈'으로 부를 건가, '그 교도관님'으로 부를 건가. 자신의 혐의와 관련 있는 수사 기밀을(빼냈든 거저 얻었든) 챙겨 방탄 수사에 대비한 박지원 원내대표는 또 어떻게 부르실 것인지.
그뿐 아니다. 여당 의원(강용석)의 쌍말 파동 때는 1년 내내 논평이니 회견이니 비판들을 쏟아내다가 야당 의원(이종걸) 쌍말 파동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일부 좌파 성향 여성단체들의 여인들은 또 어떻게 부를 건가. '년'인가 '여사'인가. 물론 '3억 원' 공천 뇌물 의혹을 사고 있는 가운데 브로커와 돈 건네기 전에 30여 차례 통화를 한 사실이 추가 폭로된 새누리당의 여자 의원도 '그년'으로 불러야 할지, '그 여성 의원님'으로 불러야 할지 도마 위에 올라와 있긴 매한가지다.
여야도 없고 좌우도 없는 막말 파문, 더 이상 세상이 희화화되기 전에 일격을 가해야 한다. 전자발찌 차고 같은 짓 또 하는 그놈, 올레길에서 성추행 살인하는 그놈들보다, 높은 데서 말장난'돈 장난'권력 장난치는 자들에 대한 민권(民權)의 응징이다.
국립국어원과 KBS가 조사한 중고생 욕설 실태를 보자. 욕을 안 하는 학생은 단 8.6%뿐이고 52%는 하루에 9번 이상 욕설을 하며 32%는 4, 5문장마다 한 번꼴로 욕을 섞는다.
그게 왜, 누구 탓인지를 알면 '그님'이고, 모른 체 국민 귀나 더럽히고 있으면 '그놈'이다. 메달을 안고 개선하는 젊은 올림픽 영웅들 보기가 낯부끄럽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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