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죽여준다. 이 작가 나중에 되면 유명해 지겠어요? 이 작품 나중에 돈 되겠죠?"
화랑에서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듣는 질의인데, 엉뚱하거나 잘못된 질의는 아니다. 미술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미술품 경매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일반인들이 미술품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생겨나는 질문들이다. 언제부터인가 '미술품은 곧 돈'이라는 공식이 성립해 버렸다. 신문지상에서도 'OO 작가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그룹 또는 사업가 △△가 몇 억원을 지원했다'라는 기사보다는 '45억원의 박수근 작품이 비자금으로 세탁되어…. 유명 작가 작품을 이중 담보로 수십억원 불법 대출'등의 기사들이 예술을 속물로 만들고 있다.
사실 세상에 돈 되는 작가나 작품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니 지금은 유명하고 비싼 가격으로 그림이 거래 되어도 몇 년 지나면 유명세나 작품값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우들을 간혹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작가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하지 않고 작가가 유명해 지고 작품값이 올라가기만 바라는 마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벼르다 작품 한 점 사면서 몇 년간 그 작가를 후원하고 지원하라는 건 아니다. 그저 미술품 투자에 앞서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자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재력을 바탕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미국의 마거리트 페기 구겐하임(Marguerite Peggy Guggenheim, 1898~1979)이 그의 자선전에 남긴 내용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랐다. 미술전체가 거대한 투기사업이 되어 있었다. 진정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속물적인 의도로 혹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그림을 구입해 미술관에 맡겨둔다. 몇몇 화가들의 경우 이제 작품 매매 시 호된 세금이 매겨지면서 1년에 한두 점만이 매매되고 가격은 비밀에 부쳐진다. 사람들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가장 비싼 것만 구입한다. 투자 목적으로 그림을 사니 감상은커녕 창고에 넣어두고 최종가를 알기 위해 매일 화랑에 전화를 걸어대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주식을 가장 유리한 시점에 팔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600달러에도 팔기 어려웠던 화가들의 작품이 이제는 1만2천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18년 전 미국 미술계에는 순수한 개척 정신이 있었다. 나는 그 운동을 지원했고 후회하지 않는다."
1940년대 미국 미술시장 역시 요즘의 우리나라와 별반 다른 게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많은 수집가들은 미술후원 활동과 지원에도 인색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현대미술의 메카가 자연스럽게 미국의 뉴욕이 되었으며, 뉴욕에는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오늘도 수많은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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