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역사는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딜레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대중적인 양식이 유행하면 예술적인 승화를 고민하게 되고 알아들음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면 대중에게 눈을 돌린다. 이러한 과정은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이뤄지는데 재즈가 수많은 양식으로 분화해가는 여정을 쫓아가는 일도 흥미롭다.
1950년대 후반 재즈계는 예술성과 대중성 가운데 어느 것을 취사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당대를 풍미하던 하드밥(Hard Bop)이 지나치게 복잡한 구성으로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오히려 현대음악에 가까운 프리재즈까지 태동의 기미를 보였다. 여기에 로큰롤이 음악 소비의 새로운 대안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비트족들이 비밥(Bebop)을 그들이 가스펠로 여겼다는 점 정도다.
이 시기 마일스 데이비스는 새로운 스타일에 몰두한다. 그는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답게 기존의 코드 배열을 버리고 선율로 회귀하는 선택을 한다. 모달재즈(Modal Jazz)라고 불리는 이 스타일은 중세 교회음악에서 성행하던 선법(모드, mode)을 통해 한정적인 코드에서 벗어나 보자는 발상에서 출발하는데 클래식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고민은 1958년 공개되는 앨범 'Kind Of Blue'를 통해 구체화되는데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이름은 빌 에반스(Bill Evans)이다.
빌 에반스는 정통 클래식 피아노 연주 과정을 거쳤지만 재즈와의 인연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플루트와 바이올린까지 꽤 훌륭히 연주했던 어린 빌 에반스는 12살 때 형을 대신해 재즈 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다. 사실 이 시기 빌 에반스는 재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밴드 멤버들이 악보에 그려 준 그대로를 연주할 뿐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재즈다운 즉흥연주를 해 낼 수 있게 된다. 이미 계획된 즉흥연주의 악보를 통해 재즈 화성을 분석하고 이를 어떤 방법으로 무대에서 연주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학구적 성정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지만 재즈를 위해 다시 작곡을 공부하는 침착한 열정으로 이어진다.
대학을 졸업한 후 빌 에반스는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1950년대 초반까지 빌리 홀리데이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3개월 정도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전부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시기 음악적으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베이시스트 짐 아톤과 듀엣으로 활동한 시카고 시절인데 훗날 재즈피아노 트리오의 교과서라 불리는 앨범 'Waltz for Debby'에서 보여준 연주 양식이 시도된 점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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