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4년 만에 시집 '북항' 출간 안도현

"시인은 시대의 안테나…시는 세상으로, 세상은 시 속으로"

시인 안도현(51'우석대 교수)이 시집 과 '문재인'으로 돌아왔다.

4년 만에 내놓은 시집 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등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문재인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는 그가 은유와 상징의 미학으로 무장한 시(詩)가 아니라 '시인'(詩人)이라는 존재로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용감한 선언에 다름 아니다.

하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구로 유명한 '너에게 묻는다' 등 수많은 시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그는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시를 통해 세상과 타협 없는 싸움을 해왔다.

"시인은 시대의 안테나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시가 개인적인 넋두리가 아니라 현실과의 관계 맺기의 시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시 속으로 세상일을 끌어오고 시가 자꾸 세상 속으로 가려고 하는 그런 고민을 계속 해왔다."

그는 지난 4월 총선에 앞선 민주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으로 직접 정치권에 참여하면서 자신과 절친한 도종환 시인을 추천, 당선시켰다. 그리고 스스로 규정한 '시대의 안테나'라는 시인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며 공개적으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전국적으로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던 21일 선친의 기일을 맞아 고향을 찾은 그를 안동에서 만났다.

은 그가 4년 만에 내놓은 시집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년간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다고 했다. 대신 그는 촛불집회에 열심히 나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분노에 찬 목소리로 추모 시를 썼다. 그때 그가 시를 쓰지 못한 것은 에 실린 "나는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네. 어두운 것들은 반성도 없이 어두운 것이어서"라는 시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MB 정부를 견디기 어려웠다. 용산 참사가 일어났을 때 공권력을 그렇게 투입해서 철거민들과 경찰의 목숨을 잃게 한 것에 대해 국가를 경영하는 대통령이 단순히 옛날식으로 공권력에 반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떠들어 댔다. 그때 '이 정권은 정말 아니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그는 강하게 비판했다. "(4대강 사업은) 가만히 있는 강을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죽인 것인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앞으로 10년 있으면 그 돈을 퍼부어서 수변공원 조성했던 것이 거의 그전처럼 돌아오지 않을까."

'강'은 통렬한 직설법으로 4대강 사업을 겨냥했다.

"내가 강에 나갔을 때/ 강은 삐걱거렸다/ 허리가 시큰하다 하였다/ 나는 보았다, 강에 나갔을 때/ 통속한 굴삭기와 식탐 많은 덤프트럭이/ 오래오래 잘 늙은 강의 허리를 파먹기 시작하는 것을//

강은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었고/ 흐르지 않자, 엎드리게 되었고/ 엎드리자, 강의 뱃가죽에서/ 네 개의 발이 생겨났고 그리하여/ 개처럼 기어다니는 강이 되었다고 하였다/ 내가 강에 나갔을 때는 저녁이었고/ 강은 어스름 속에서 컹컹 짖었다…

너는 강이므로 그냥/ 강으로 흐르고 싶다고 말했지/ 너는 강이므로 강이 되어 살고 싶다고…"

시집 은 제목에서부터 의미심장하다.

그는 "북항은 목포항에도, 부산항에도 실제로 존재한다"며 "실제의 북항은 주 항구가 아니라 보조 항구쯤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가 선택한 '북항'이라는 제목은 '북'(北)이라는 글자가 갖고 있는 북쪽, 패하다, 배신하다, 달아나다 등의 여러 중의적인 뜻을 모두 담고 있다.

그는 "남쪽,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참 묘한 글자"라면서 "그냥 북쪽 하면 그쪽(북한)을 생각하고, 말 하나에 여러 가지 연민과 증오와 애정이 모두 내포돼 있다"고 덧붙였다. 몇 년 전 그는 북한에 나무 보내기 운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 10여 차례 평양까지 가서 평양 근교에 10만㎡(3만여 평)의 땅에 사과나무 1만2천여 주를 심었다고 했다. 그때 3개년 계획으로 사과나무를 심고 가꿀 계획이었는데 이 정부 들어 남북 간 교류협력이 전면 중단되면서 그 사업도 지속되지 못했다.

그의 목표는 남북 간에 닫힌 문을 다시 열어 사과나무를 심으러 북한에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제가 남북문제로 돌아오자 그는 "금강산 사건과 천안함, 연평도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 정부가 슬기롭게 판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고 "남쪽의 기술과 인적자원을 북한에 투자할 기회를 잃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먹혀 들어가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민족문제에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바람에 그렇게 됐지만 우리가 '통 크게' 남북문제를 해결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시집 은 "예상하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인으로서)다시 옛날의 안테나 역할을 해야 할 시기가 왔구나라는 각오를 다지면서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나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적 형식을 갖춰서 해야겠다"는 고민을 담은 시로 가득 차 있다.

모호하고 불투명한 시어로 가득 찬 '일기'가 대표적이다.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으로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는 한때 민중시인으로, 민족시인으로 혹은 '대중적 시인'으로 불리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렵게 시를 썼는데 대중은 너무 쉽게 사랑했다"고 표현했다. '대중시인'이라는 호칭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그래선지 을 출간한 후 그는 "나도 어렵고 '아리까리하고' 애매모호한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번에는 시집을 내고 기분이 참 좋았다. 시적인 고민을 제일 오래 하고 깊이 했다"고 말했다.

출간과 더불어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문재인 후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을 했다. 그리고 7, 8년 동안 휴대전화 없이 자유롭게 살던 그는 스마트폰까지 구입했다. 트윗과 리트윗을 통해 문 후보에 대한 지지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서였다. 그의 트위터(@ahndh61) 팔로어 수는 1만2천여 명.

"트위터를 하는데 재미가 있더라. 140자 안에 글을 쓰는 짧은 형식도 (시인인) 내게 맞고 무엇보다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보다 훨씬 빨리 세상을 알 수 있다."

그의 '트윗질'은 따지고 보면 문 후보의 선거용이다. 그는 문재인을 돕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에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듣고 문 후보에게 전달하는 역할, 그러기 위해 트윗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선거용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트위터부터 켜고 리트윗을 하고 수업시간이 빌 때 또 확인하고 반응을 확인하고 그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트윗에 매달린다. 스마트폰 초보자(?)로서는 중독 수준인 셈이다. 조만간 그는 문재인 선거캠프의 전면에 나설 예정이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더라. 대통령 후보로서 권력의지나 권력욕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는 그것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의연함까지 갖추고 있어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다. 그는 무엇을 해도 결정할 때 굉장히 신중하게 한다. 참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줄 안다. 또 굉장히 학습효과가 빠르다. 열심히 듣고 그것을 자기식으로 정리할 줄 안다."

그는 문 후보를 지지하는 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둥을 세웠으며 이제 다음 대통령은 대들보를 얹고 민주주의라는 한 채의 집을 완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나는 문재인에게서 희망에 찬 어떤 예감을 읽는다"며 그를 지지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문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유력 대선 주자 중의 한 사람으로 떠오르기 전인 지난해 초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 후보를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 대적할 수 있는 후보로 얘기한 적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그때 이야기한 것들이 하나하나씩 진척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 연말까지 그는 시 한 편을 쓰지 못하더라도 좀 더 망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현실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로 있으면서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되는 바람에 4년 반 동안 '거리의 교사'로 떠돈 적이 있었고 전북도 교육감 선거 때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 후보의 대변인을 맡아 직접 선거를 도와준 적도 있다.

지난 총선 때의 경험에 대해 물었더니 "내가 한 그것을 정치라고 한다면 나 스스로는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정치인은 대체로 말을 잘하고 대체로 똑똑하고, 그 잘하는 말이라는 것이 정치적이더라"고 대꾸했다.

그래선가 그가 지지하는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재작년 전북도 교육감선거에 참여해서 승리했을 때도 교육감 준비위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소개하면서 "만약에 정권교체를 하게 된다면 (문화예술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은 하겠지만 혼자서 시를 쓰고 학생들 가르치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는 일을 더 좋아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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