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수십 명의 인재가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 길에 나선 대사건이 바로 1498년(연산군 4)에 일어난 무오사화다. 후에 있었던 여느 사화와 달리 사초(史草)가 발단이 되어 사화(史禍)라고도 한다.
사건의 단초는 탁영이 스승 점필재(金宗直'1431~1492)의 조의제문(弔義帝文'중국의 고사를 인용해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글)을 사초로 활용한 데 있었다. 따라서 영남사림파의 종조(宗祖)로 존경받는 점필재는 유택에서 끌려나와 사지가 찢기는 처참한 형벌을 당했다.
공은 야은 길재(吉再)에게 성리학을 배운 김숙자(金叔滋'1389~1456)의 아들이다. 1459년(세조 5) 문과에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를 시작으로 박사, 감찰 등을 두루 지내다가 1464년(세조 10) 세조가 천문'지리'음양학 등 잡학을 공부한다고 비판하다가 파직된다. 이듬해 경상도병마평사란 직책을 받으며 다시 출사하면서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접어들었다. 수찬, 이조좌랑 등의 벼슬과 세조, 예종 두 왕조를 거쳐 1471년(성종 2)에는 예문관수찬지제교 겸 경연검토관, 춘추관기사관으로 승진하였다. 노모를 모시기 위하여 외직을 희망하자 성종은 고향 밀양이 가까운 곳이자 산수가 아름다운 함양군수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어느 날 학사루(경남유형문화재 제90호)에 오르니 평소 못마땅했던 김안로의 시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떼어 불사르게 한 것이 그와 사감(私感)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함양군은 차(茶)를 진상(進上)했다. 그러나 군내 어느 농가에서도 차를 재배하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부과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웃 고을, 즉 차가 생산되는 고장에 가서 쌀 한 말을 차 한 홉과 바꾸어야 되니 군민들의 부담이 컸다.
공은 828년(신라 흥덕왕 3) 견당사로 중국에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나무 씨를 가져와 하동'구례'산청'함양 등에 심었다는 기록을 보고 '아 우리 군이 바로 이 산 밑에 있는데 어찌 신라 때 남긴 종자가 없겠는가'하면서 나이 많은 분들에게 조사를 시킨 결과 엄천사(嚴川寺) 북쪽 대밭 속에 두어 그루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은 매우 기뻐하며 그 땅을 차밭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관영다원(官營茶園), 즉 관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는 차밭이 되었다,
공의 생애 중 함양군수 시절이 개인적으로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고향 인근이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었고, 차밭을 만들어 고을 사람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농업용수시설을 보수하는 등 선정을 펼치자 곳곳마다 선정비와 생사당이 들어설 정도로 널리 존경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일손과 정여창, 김굉필 등 훌륭한 제자를 키워 후일 그들이 영남학파는 물론 조선 성리학의 맥을 이어 나갔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마(魔)가 끼는 법. 1474년(성종 5) 막내아들 목아(木兒)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홍역으로 죽고, 그해 여름에는 딸이, 가을에는 맏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공은 사직서를 올렸으나 당시 경상감사 강희맹은 수리하지 않고 간곡히 만류하여 하는 수 없이 복귀했다. 공은 막내아들 목아를 잃은 심정을 시로 쓰고 한 그루 나무를 심어 위로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어찌 이리 바삐 가느냐/다섯 살 생애가 전광석화 같구나
어머니는 손자를 부르고/ 아내는 자식을 부르니/이때야말로 천지가 아득하구나.
중종반정으로 신원되고 밀양의 예림서원, 구미의 금오서원 등에 제향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 '점필재집' '유두류록' '청구풍아' 등이 있다. 오늘날 함양초등학교 교정을 지키고 있는 큰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407호)는 그때 죽은 목아를 위해 심은 나무라고 한다. 다른 느티나무와 달리 판근(板根'책받침 같은 뿌리)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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