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녹색 두리기둥-김광규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전깃줄 끊긴 채 자락길 어귀에

시멘트 기둥으로 홀로 남은 전신주

담쟁이덩굴이 엉겨 붙어

앞으로 옆으로 위로 퍼져 올라가

우뚝 솟은 녹색 두리기둥 만들어 놓았네

폐기된 전신주 꼭대기

담쟁이 더 기어 올라갈 수 없는 곳

바람과 구름을 향해

아무리 덩굴손 허공으로 뻗쳐보아도

이제는 더 감고 올라갈

기둥도 나무도 담벼락도 없네

살아있는 덩굴식물이 한 자리에

그대로 소나무처럼 머물 수 없어

제 몸의 덩굴에 엉켜 붙어

되돌아 내려오네

온갖 나무들 드높이 자라 올라가는

저 푸른 하늘에 앞길이 막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되돌아 내려오며

삶터 잘 못 잡은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두리기둥 만들어 놓았네

----------------

시인의 삶이 사람에게 삶의 방향을 가리켜 줄 수는 없어도, 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한계가 많은 구체적인 세계에 있지만, 시는 가능성의 공간인 보편적인 세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는 시인의 삶보다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

시인의 삶이 경험한 담쟁이덩굴은 평범한 식물입니다. 그러나 시 속에 들어온 식물은 삶의 방향을 가리켜 주는 나침반입니다. "삶터 잘못 잡은 삶"이 살기 위해 이리저리 모색한 모든 것들이 결국 "아름다운 두리기둥"이 된다는 그런 절실한 가르침을 주는.

시인·경북대교수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의 대구시장 공천 과정에서 현역 중진 의원 컷오프와 공천 잡음이 이어지며 당내 반발이 커지고 있다. 리얼미터...
정부가 석유제품 가격 안정을 위해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음에도 일부 주유소에서 가격 인상이 발생한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유소 가격 변동을 ...
한 네티즌이 현관문 앞에 택배 상자가 20개 쌓여 문을 열기 어려운 상황을 공유하며 택배 기사와 소비자 간 배려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안전 확보를 위해 중국의 협조를 압박하며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의 연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