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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즐거운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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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핏하면 무언가를 잘 두고 다닌다. 아니, 잃어버린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그 물건들의 종류는 이것저것 다양하다.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나도 생각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로댕 어록'이라는 책이 특별하다.

그날 나는 동해안의 망상이라는 곳엘 갔다가 대구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탔었다. 겨울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시린 바닷바람을 맞으며 쏘다니다가 버스에 올랐다. 얼마나 달렸을까. 차 속의 히터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져 그만 잠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이미 대구의 터미널에 도착한 직후였다. 나는 도망치듯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다. 집에 돌아와서야 책을 두고 내린 것을 알게 되었다. 졸음에 겨워 무릎 위에다가 책을 놓았던 것까지는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후에 좌석 아래 바닥으로 책이 떨어져 버렸던 것이리라.

나는 다음 날 동부정류장에 가서 분실물 수거함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책은 없었다. 직원들한테 물어보았으나 허사였다. 책의 여백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내용들이며, 밑줄을 그어 놓은 '요점'들을 함께 잃어버린 것이 되었다. 아까운 마음에 한참 그곳을 서성였다.

그 책은 '정음사'에서 나온 문고판이었는데, 책표지 도안이 바다의 잔잔한 파문 같은 것, 혹은 잠실의 누에들이 일제히 뽕잎을 갉아대는 입 모양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다. 아무튼, 며칠 후 나는 그 책을 다시 한 권 사들고 왔다. 아쉬웠던 마음을 그렇게 조금은 달랠 수 있었다.

그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은 릴케가 정리해 놓은 로댕의 말들, 그 매혹에 빨려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깊이 있는 인식 세계는, 당시 글을 쓰고 싶었던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보다 저물도록 바닷가를 떠돈 그 시절의 혼돈이 그 책 속으로 안겨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벌써 이십 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최근 어느 날 문득 낮잠에서 깨었을 때, 책장에 꽂힌 책들 중 불현듯 이 책의 제목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가벼운 분실, 소중한 책과 함께한 그날의 방황이야말로 내 인생의 '즐거운 부록'으로 붙여진 것이라 추억해 본다.

올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수많은 일들이 밀려왔고 또한 밀려나갔다. 이런저런 연말의 일들로부터 하루쯤 비워 나는 다시 그 길에 오르고 싶다. 아껴 읽다가 홀연히 빠져나가도 좋을 난파도 같은 책 한 권을 끼고서… 그래, 동해바닷가, 그 한 페이지 한 페이지의 파도는 다시 돌아와 지금도 철썩철썩 날 때려주고 있으니까.

석미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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