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이런저런 약속들을 안내하며 한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한 2012년 탁상용 달력이, 다 지키지 못한 약속들은 기록으로만 매단 채 한마디 아쉬움의 탄식도 없이 사라지고, 새롭고도 많은 약속을 담을 2013년 새해 달력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수많은 희망의 언어를 전하며 시작했던 2012년은 많은 이야기를 뒤로한 채 저물어 갔다. 게다가 지난 12월의 끝자락은 유난히 잦은 폭설과 칼날 같은 매서운 한파로 인해 한 해를 정리하는 발걸음을 더 바쁘게 한 것 같다. 눈이 그다지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인데도 세상을 흰색으로 두텁게 채색한 백색의 광경을 너무 여러 번 보는 탓에 아름다운 감성에 젖기보다는 현실적 불편함을 호소하는 마음이 더 커서 차분히 한 해를 돌아보지 못했다. 유난히 일찍 찾아온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일들을 실천하려고 마지막까지 분주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부지런한 주위 분들과는 다른 나의 나태함을 채찍질하면서 다시금 한 해를 되돌아본다.
2012년은 개인적으로 굴곡 많은 길을 달려온 듯하다. 지병으로 병원에 오래 계시던 아버님이 결국 세상을 떠나셨을 때는 하늘이 무너진 황망함과 죄스러움에 하늘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의 슬픔을 겪었다. 그 와중에 지금껏 해온 개인전 중 가장 큰 규모의 전시가 계획되어 있어서 몇 번이고 규모를 축소하거나 다음으로 연기하려는 생각을 하다가 원래 계획대로 일을 실행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 웃고 즐거웠던 일들이 지금 나에게 아픔이 되기도 하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 속에서 지킨 약속이 지금은 오히려 기쁨으로 남았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엮어가야 하는지 깨우치게 해주었다. 또한 약속되지 않았던 일들도 많이 경험하면서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그 슬픔과 기쁨을 추억으로 포장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문득 앞만 보고 정신없이 걸어오다 보니 담아진 것보다 오히려 흘린 것이 많았던 것은 아닌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혼자만 달려온 이기적인 면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작품에 매진하겠다는 약속 때문에 발목이 묶이고 편파적 시각에 매몰되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등한시하지나 않았는지? 겸허한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새해에는 깨어 있는 소중한 삶을 위해 눈을 떠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새해에도 우리는 자신과 가족, 친구, 연인 등 숱한 주변과의 소중하고 다양한 약속을 할 것이다. 조금은 더디지만 서두르지 말고 부족하지만 욕심내지 않으며 기다리면서 늘 웃을 수 있는 여유로운 넉넉함이 필요한 약속을 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약속을 담아 2013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김윤종(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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