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아리랑의 생성은 고려의 패망과 조선의 개국과 관련된다. 고려가 망한 후 조선의 새 왕조에 출사하기를 거부한 고려충신 72인은 두문동(杜門洞, 황해도 개풍군 광덕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태조 이성계는 그들을 회유하며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 무렵 전오륜(全五倫)을 비롯한 고려의 일곱 충신들은 강원도 정선으로 내려가 서운산에 은거했다. 그들은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였고 나라 잃은 죄인은 해를 볼 수 없다 하여 외출할 때는 항상 패랭이를 눌러쓰고 다녔다. 매월 삭망일이면 산 정상에 올라가 고려의 수도인 송도 쪽을 바라보고 시를 읊으며 통곡했다. 나라 잃은 비통함을 읊은 이들의 한시(漢詩)는 훗날 마을 사람들에게 애조 띤 메나리에 실려 불려졌다. 애절함을 실은 가락에는 한탄과 체념, 애증을 담아내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아리랑의 모체인 '정선아리랑'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이 구절은 3천여 수가 넘는 정선아리랑 노랫말 중 가장 대표적인 사설이다. '만수산'은 고려의 수도 송도에 있는 산을 말하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고려왕조에 닥쳐옴을 뜻한다. 정선읍에서 남쪽으로 40여 리 떨어진 백이산과 서운산 아래에 거칠현동(居七賢洞)이 있다. 이곳이 바로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이다. 마을에는 칠현사(七賢祠)가 있으며 일곱 충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칠현비(七賢碑)가 서 있다.
정선아리랑에는 가사를 촘촘히 엮어 부르는 '엮음아리랑'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사설의 길이가 비교적 길며, 오늘날 랩처럼 말하듯이 노래를 부른다. 사설의 내용에는 풍자와 해학이 가득 담겨 있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일삼삼 삼육 십팔 마흔 여덟 살~ 스물네 개의 허풍산이는 물살을 나고 비빙글 배뱅글 도는데~ 우리 집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강원도 첩첩산중에 머물고 있던 정선아리랑은 조선 후기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한양에 전파됐다. 강원도 인부들은 경복궁 중수에 사용할 소나무를 베어 뗏목으로 엮어 한강에 띄우고 노를 저어 마포나루에 도달했다. 이 과정에서 강원도 인부들이 부른 정선아리랑이 한양에 전파됐다.
한양에 전파된 정선아리랑은 한양스타일의 '경기자진아리랑'(아리랑타령)으로 변형돼 유행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1926년에는 영화 아리랑의 배경음악인 노래 아리랑이 탄생하게 됐다. 이즈음 각 지방에서는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해주아리랑 등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영화 아리랑을 비롯하여 각 지역의 주요 아리랑들은 정선아리랑을 모체로 하여 이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신민요'로 분류된다.
유대안<작곡가·음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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