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대구 동구 효목동 한 건물 신축 공사장으로 올라가는 길. 쌓인 눈이 얼어 인도 곳곳이 빙판길로 변해 있었다. 길가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20대 여성이 하이힐을 신고 한 손에 짐을 든 채 조심스럽게 걷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여성은 "눈이 내린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곳곳이 빙판길"이라며 "어린이나 노인들은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직장인 공모(42'여) 씨도 12월 31일 오후 대구 중구 약전골목을 지나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얼마 전 내린 눈이 한파로 꽁꽁 얼어붙어 빙판길로 변한 거리를 걷다 미끄러져 팔꿈치를 다쳤다. 공 씨는 "거리 곳곳이 빙판길인 것을 보고 종종걸음으로 걸었지만 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며 "병원에서 2주간 깁스를 할 것을 권했지만 일에 지장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물리치료만 받고 그냥 돌아왔다"고 했다.
12월 28일 폭설이 내린 뒤 5일이 지났지만 눈을 치우지 않아 빙판길이 된 주택가 이면도로와 골목길, 인도 등에서 낙상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폭설이 내린 뒤 이달 1일까지 빙판길 안전사고로 구조대가 출동한 사례는 280건이다. 이 중 빙판길 낙상사고가 92%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지역 지자체가 직접 나서 말끔하게 눈을 치운 주요 간선도로와 달리 주민들 손에 제설을 의존해야 하는 주택가 등 제설 사각지대는 영하의 날씨에 빙판길로 변했다.
대구 중심가인 중구 동인동 간선도로에는 눈이 녹았지만 대형 건물 주변이나 골목길은 쌓인 눈이 얼어 주민들이 조심을 하며 걸어야 하는 형편이다. 주민 박권일(48'대구 중구 동인동) 씨는 "눈 위를 걷다 다친 주민들이 많은데도 지자체는 눈 치우는 일을 주민에게만 떠넘기고 뒷짐만 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구지역 8개 구'군은 눈길 사고를 막기 위해 2007년 '내 집 앞 눈 치우기' 내용을 담은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지만 유명무실하다. 조례에 따르면 건축물 관리자는 주민과 차량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건축물과 인접한 도로 위의 눈을 일정 시간 안에 치워야 한다. 또 눈을 치울 수 있는 삽이나 빗자루를 매년 12월 1일부터 다음해 3월 15일까지 비치하고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강제조항이 없는 데다 지자체의 홍보부족으로 조례 내용을 모르는 시민이 많아 허수아비 조례로만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상인 김모(52'대구 중구 장관동) 씨는 "눈 치우기 조례에 관해 들은 적이 없다"며 "조례 내용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눈 치우기 작업에 동참했을 텐데 이미 얼어붙은 눈을 치우려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대구시와 각 지자체는 뒤늦게 제설'제빙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 도움 없이 한정된 공무원만으로 모든 주택가 골목길과 이면도로 위 제설'제빙작업을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직원 6명이 오전부터 온종일 골목마다 염화칼슘과 모래를 뿌려 얼음을 녹였지만 도와주는 주민들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대구시 도로과 안종희 과장은 "내 집 앞 눈 치우기에 과태료를 물리는 등 강제성을 두면 시민들이 부담을 느껴 치우겠지만, 어쩔 수 없이 자율적인 실천에 의존하고 있다"며 "시민들이 자기 집 앞 눈만이라도 치워주면 낙상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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