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종교인 과세, 백지화되다니

종교인 과세가 또다시 불발됐다. 기획재정부가 17일 발표한 '2012년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에 종교인 과세 여부는 포함되지 않아, 차기 박근혜 정부로 공이 넘어가게 됐다. 이로써 지난해 3월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 관점에서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힌 이후 실현 가능성을 높여가던 종교인 과세 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재정부는 종교인 과세가 백지화된 이유에 대해서 시간적인 어려움을 들었다. 소규모 종교 시설의 경우 납세를 위한 인프라 구축 준비가 필요하고, 과세 방식과 시기에 대하여 조금 더 협의를 거쳐 공감대를 이뤄야 할 사항이 남아 있다고 표면적인 불발 사유를 들었다. 하지만 속내는 종교인 과세로 세수 증대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 그리고 종교계가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 두 가지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측면이 강해서 납득하기 어렵다.

종교인 과세는 세수 증대 문제가 아니라 국민 개세주의라는 '세정(稅政) 정의'의 문제다. 세수를 늘리는 데 별 효과가 없다고 해서 세금을 걷지 않는 것은 지극히 편의적이고 기능주의적 발상이다. 세정의 생명은 소득이 많건 적건 세금을 걷는 공평성과 무차별성이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종교인뿐 아니라 개인이나 기업도 세금에 거부감을 갖는다. 하지만 종교인도 국민인 이상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천주교 성직자들은 이미 1994년부터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소득세를 내고 있고, 일부 개신교 목사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다른 종교인들도 이를 따라야 한다. 종교인 과세를 근로소득세로 할 거냐 기타소득세로 할 거냐는 지극히 기술적인 문제다. 세목(稅目)이 아니라 세금을 내겠다는 마음가짐은 국민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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