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힘 없다면 대들지도 말라" 친일파의 변명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윤치호 지음/ 김상태 편역/ 산처럼 펴냄.

친일파이자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지식인이었던 윤치호(1865∼1945)가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 동안 쓴 일기 중 1919년 1월부터 1943년 10월까지를 발췌해 묶은 책이다. (일부 빠진 해(年)도 있다.) 전체 일기는 대학노트와 수첩 등 30여 권에 기록되어 있는데 1883년 1월 1일부터 1887년 11월 24일까지는 한문, 1887년 11월 25일부터 1889년 12월 7일까지는 한글, 미국 유학 중이던 1889년 12월 7일 이후는 영문으로 썼다. 윤치호가 영문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미국 유학 중에 영어 실력향상을 위해서였다. 이후 50여 년 동안 영어로 일기를 썼던 것은 영어일기가 습관으로 굳어진데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내용을 숨기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윤치호의 일기는 그가 친일파라는 이유 때문에, 또 개인적 생각이 많이 피력된 일기라는 이유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식과 명망을 두루 갖춘 인물의 '식민지살이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여느 독립운동가의 일기 못지않게 귀중한 사료로 재평가받고 있다.

윤치호는 일기에 자기 일상은 물론이고 공인으로서 활동, 국내외 정세에 대한 견해와 전망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자신이 겪은 사건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당시 발생했던 여러 사건의 정황, 정국의 추이와 민심의 동향, 각종 루머, 일기에 등장하는 지인들의 인성이나 사상, 행적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옮긴이 김상태 교수는 윤치호에 대해 '친미파였다가 친일파로 돌아선 쓰레기 인간'으로 알았다. 그러나 "3'1운동 당시 그가 쓴 일기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친일파라고 해서 그의 일기가 보잘것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아니, 친일파이기에 그의 일기는 어느 독립운동가의 일기 못지않게 중요한 사료"라고 말한다.

일반 독자인 우리는 사실 '정의롭다고 판단되는 쪽'의 시선으로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았기에 진실 혹은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윤치호의 일기는 음미해볼 만하다.

윤치호는 1919년 3월 1일 일기에서 '순진한 젊은이들이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불을 보듯 뻔한 위험 속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중략) 만약 만세를 외쳐서 독립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남에게 종속된 국가나 민족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썼다.

책 제목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윤치호가 일기에 가끔 적었던 말인 동시에 그의 인생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그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는 조선이 독립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정치적 군사적 투쟁을 자제하고, 경제적 도덕적으로 실력양성에 전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가 독립투쟁이 아니라 자강운동에 몰두한 이유였다.

책 제목만큼이나 윤치호는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다. 일본의 만주 점령에 대해 세계열강이 비난하자 그는 1931년 9월 25일 일기에서 '이른바 문명화한 민족이 일본인이 밟고 있는 수순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들 자격이 있는가. 영국이 인도를 병합하고,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한 것처럼, 일본도 만주를 병합할 권리가 있다. 미국은 루스벨트 집권기에 야만스럽게도 일본의 조선병합을 지지했다. 그런 미국이 무슨 낯으로 일본의 만주점령을 반대할 수 있는가. (당시) 조선정부가 타락하고 무능했나? 그렇다면 만주의 중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중략) 관건은 오직 하나다. 일본이 만주를 군사적으로 점령함으로써 떠안게 될 막대한 부담을 견뎌낼 만큼 돈이 풍족하냐는 것 말이다'라고 말한다.

지은이 윤치호는 1880년대와 1890년대 초반 일본, 중국, 미국에서 유학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다.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개화'자강운동의 핵심인물이기도 했다. '105인 사건' 주모자로 체포돼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3'1운동이 시작되자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 인터뷰에서 독립운동 무용론을 피력해 물의를 빚었고,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친일을 주도하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고위간부를 지내며 친일에 앞장섰다. 640쪽, 3만6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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