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키우는 상담뜨락] 아이는 없다, 부모만 있을 뿐

한 번은 필자의 청소년을 위한 가족 상담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가족상담 중이던 아버지가 중학생인 아들에게 비난과 나무람을 섞은 잔소리를 반복하자 묵묵히 듣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외치듯이 말했다. "아빠, 아빠는 왜 나를 키우면서 날마다 죽어버리라고 야단치며 미워하셨나요? 왜 그렇게 저를 때리고 무섭게 대하셨나요? 왜 제게 찬물을 끼얹으면서 공부하지 않으려면 먹지도 말라며 제 밥상을 뒤집어 차 버렸나요?"

순간, 아버지는 당황해 했다. 아들이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지금, 아빠가 나에 대해 이모저모 못마땅해서 야단치고 있지만요. 지금 제 모습은 결국, 아빠가 만들어 준 거예요. 그러니 아빠가 책임져야지요. 왜 저보고 난리세요? 난 그때 아빠 야단을 맞고, 비로소 내가 못나고, 공부도 못할 것이며, 앞으로 부모 애나 태우는 '골통'이 될 것이란 것을 미리 알았고, 정말로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뭐가 잘못되었나요?"라며 맹랑하게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느 사이, 아버지를 원망하며 달려드는 어린 아들의 두 눈에는 뜨겁고 굵은 눈물이 투닥투닥 무릎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범처럼 호령하듯 비난을 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들의 슬픈 얼굴보다 더욱 큰 슬픔을 머금고 소리없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는 후회와 참회의 뜨거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날, 필자의 가족 상담을 위한 뜨락에서는 상처입은 중학생 아들을 위한 가족상담이 더 이상 요란스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침 그때, 창가 빈틈으로 스며든 라일락 향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설렘과 기쁨으로 전해지는 편안하고 행복한 내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가족상담의 뜨락에서, 이들의 마음을 도와야 할 또 한 사람으로서의 가족 위치에 선 필자의 머릿속에는 대상관계 심리학자인 위니컷의 명언이 생각났다.

"아이는 없다. 오직 부모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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