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해 있지만 미국 역시 예나 지금이나 학교 폭력으로 시끄럽다. 맥아더(1880~1964) 원수가 다닐 당시엔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배들의 가혹 행위로 인해 자살하거나 중도에 그만두는 생도들도 생겨났다.
그러자 당시 윌리엄 대통령까지 나서 웨스트포인트에서의 학교 폭력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학생 대표 자격으로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맥아더는 고민에 빠졌다. 양심의 편에서 가해자들을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군인의 입장에서 입을 다물 것인가. 그는 결국 양심을 택했다.
이 일로 인해 사관학교의 특성상 맥아더는 동료나 선후배들과의 관계가 나빠졌다. 결혼식 때도 친구들이 너무 적어 하객들이 도리어 의아해 할 정도였다.
맥아더는 필리핀 군정 제독을 지내고 중장으로 예편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관학교에 들어갔는데 어머니의 교육열이 대단해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 근처에서 숙식하면서 뒷바라지했다. 이 덕분에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수석 졸업할 수 있었다. 1880년 오늘은 그가 태어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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