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이런 응원을 해주는 사람을 이 책에서는 동료라고 부른다. 물론 무턱대고 응원해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이해하기도 전에 동의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삶에는 동지가 아니라 동료가 필요하다. 동료란 내 삶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지 내 삶에 '동의'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동지를 만나기보다 동료를 만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동료란 '삶'을 나누는 사람이지 '뜻'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엄기호의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중에서)
오랜만에 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마음에 남는 여운으로 하루가 든든했다. '샘은 너무 바빠서 나는 틈을 찾을 수 없고, 나의 틈에 샘은 들어올 짬이 없지요. 친구니까 봐 주지, 정말 애인이었으면 예전에 끝장날 사이지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거 알아요. 내 친구인 것도 알고요. 그래서 투정도 부리는 거 아시죠? 새해, 건강 조심해요. 전에 아프다는 말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왜 그토록 마음 아픈지 샘은 잘 모를 거예요. 늘 내 친구로 건강하세요.'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친구의 편지로부터 시작된 나의 상념은 제법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내 속의 익숙한 풍경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미 사라진 풍경 속의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불쑥 나타날 것 같아서다. 돌아보는 건 사실 바보 같은 일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풍경의 속성도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걸어온 기억들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내가 지우려고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시간이 기억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동료들은 시간을 넘어 현재 내 풍경 속에 그대로 있었다. 동료의 기억은 가까운 풍경 저편에서 여전히 같은 숨을 쉬면서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힘겨워도 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동료들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법 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체감한 것은 뜻을 함께하는 사람, 즉 동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동지도 변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뜻도 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삶을 함께하는 사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그 아픔에 대해 공감해주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동료다. 동료는 변하지 않는다. 삶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동료다. 우리 모두가 아픈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픔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지금 아프다는 사실은 모두 일치한다. 분명 편지를 보낸 친구는 내 동료다.
삶이 참 힘겹다. 내가 걸어가는 길도 무척이나 가파르다. 그러나 하기 싫다고 회피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도 없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동료들이, 내 오랜 친구들이 고맙다. 반드시 뜻을 함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길을 걸어주는 사람들. 힘들 때는 내 손을 잡아주고 내가 힘들게 들고 있는 짐을 선뜻 대신 받아주는 사람들.
겨울방학 연수를 진행하고 있는데 연수 진행을 맡은 대학교 관계자가 이상한 듯 말했다. '저 샘들 모두 미친 것 같다'고. 연수를 관리하는 내 오랜 친구들을 보고 이른 말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그 자리를 지킨다. 타인의 눈에는 분명 이상한 일로 보일 게다. 사실 그 풍경은 몇 년 전의 내 풍경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그들은 내 친구였다. 그거 아는가? 이런 과정을 만나 공감한 또 다른 누군가가 다음 시간에 다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 이야기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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