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정혜영

영화 '박수건달' 여의사 역

# 20년 만에 첫 스크린…'기부의 여왕' 아닌 배우로 봐주세요

배우 정혜영(40)은 조심스러워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서였다. 그가 나쁜 일을 한 건 아니다. 부부 금슬이 좋은 배우, 네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엄마, 이웃 사랑이 뭔지를 제대로 실천하는 기부자이자 봉사자라는 수식어들이 그와 남편 '션'을 따라다니는데 대중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기 때문이다.

몰래 하는 봉사와 선행을 원하지만 유명인인 그와 남편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스트레스인 건 아니다. 다만 연기 쪽으로 좀 더 집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지만 봉사나 아이 이야기보다 연기 쪽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20년 만의 첫 스크린 도전에 흥행을 해서인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영화 '박수건달'(감독 조진규)은 건달 광호(박신양)가 사고로 손금이 바뀌게 되면서 낮에는 박수, 밤에는 건달로 이중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게 담은 영화다. 무당으로 변신해 웃음을 주는 박신양뿐만 아니라 소재와 설정, 코믹 에피소드, 눈물 요소가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킨다. 정혜영은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여의사 미숙 역을 맡아 아역배우 윤송이와 함께 눈물과 감동을 담당한다.

★박신양과 애틋한 멜로…작품성 위해 많이 편집

350만 관객(28일 영화진흥위원회 기준)을 돌파했고,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그는 "박신양이나 아역배우 윤송이 등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웃음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감동과 울림을 주고 싶어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회상했다. "재밌게 시나리오를 봤는데 후반부에는 또 다른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어서 고심했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낀 감동과 울림을 대중에게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과 걱정이 있었거든요."

극 중 자신을 짝사랑하는 박신양과 애틋한 멜로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을 덜어냈다. "많은 부분이 안 나오게 됐으니 처음에는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갔죠. 나중에 중요한 신이 있는데 가벼운 엄마로 보이면 안 되고, 또 코믹하게 보이는 것도 진실한 엄마로 보일 수 없어 상당 부분이 편집됐죠."(웃음)

정혜영은 1993년 SBS 공채탤런트로 시작했다. 그간 영화 출연을 바라기도 했지만 어떤 기회를 잡고자 달려들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과거에 좀 더 유명해지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끝도 없이 달려갔을 거예요. 그러나 제가 좋아서 연기했고, 쉼표가 필요할 때는 여행을 다녔죠. 제가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을 누린 게 좋았고 값어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서울예전 광고창작과를 다니던 그는 우연찮은 기회로 데뷔했다. 방송국 공채시험을 같이 보자는 친구의 요청에 마지못해 갔다가 덜컥 붙어버렸다. 사회에 진출한 같은 과 선배들 덕에 CF에서 단역으로 나서는 등 TV에 나올 기회도 많아졌다. 그렇게 존재를 알려 나갔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고 고백한 그는 "1995년 드라마 '째즈'를 끝내고 연기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자기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평소 관심 있던 디자인과 카피라이터가 목표였다. 그러나 외국에 있으니 연기가 계속 생각났다. 마침 한국에서 섭외 전화가 왔고 그를 흔들었다. 계속 공부를 하겠다고 거절하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또 전화가 왔다. 그때 "어쩌면 이게 하늘이 내게 준 천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때부터 연기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전에는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고 못한다고 혼났어요. 화장실 가서 펑펑 울기도 했죠. 그런데 다시 돌아오니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게 좋은 직업인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욕심은 내지 않으면서 연기를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등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지냈죠."

★아이·가정 있는 나…연기 그만둬도 상관 없어

그는 남편을 만나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고 기억했다. 13년 전 현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의 생일파티에 갔다가 션을 만나 결혼한 지 9년째. 최근 방송에서 보여준 두 사람 금슬이나 공식 석상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또 이들 부부는 CF 모델료 등 상당한 금액을 좋은 일에 쓰도록 기부에 나서 칭찬을 받는다.

"남편이 저를 아름답게 바꿔놓았죠.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게 좋은 것 같아요(웃음). 또 일은 잘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잖아요. 시청률이 저조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 부딪히는 인연에서 행복을 찾죠."

남편을 만나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다. 그는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을 만나겠다는 이상을 갖고는 있지만 정작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며 "남편을 만나고 '상대방이 바라보는 나는 준비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봤을 때 이미 준비돼 있는 사람이길 항상 기도하며 산다"고 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도 묻어난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 연기자의 삶을 사는 건 힘들지 않으냐'고 하니 "남편이 함께한다"고 웃었다. "제가 일을 못 해도 아이와 가정이 있으니 상관없어요. 제가 일을 못 하게 됐다고 또 배우 생활이 끝났다고 우울해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 때문에 일을 못 하게 되면 '이게 뭐지? 이제 배우 생활 못 하는 건가?'라는 생각조차 안 했죠. 그러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일이 들어오더라고요.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웃음)

진현철(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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