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새벽 불빛

새벽 6시, 어김없이 모닝콜이 울린다.

어둠 속에 잠들었던 하루가 깰 즈음 빌딩 사이로 유독 환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도 모를 이 광경을 우연찮게 지켜보게 되었다. 어둔한 행동거지에다 환자복까지 입은 사람들이 창밖으로 비쳤다. 어느 날 새벽,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작은 요양원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가 밀집한 주거지역에 소리 소문 없이 들어선 것이다. 놀라움과 생소함으로 며칠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학원이 없어지고 요양원이 이사를 온 것 같았다.

몇 년 사이 주변에는 수많은 요양병원과 요양원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수년 전만 해도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신다고 하면 마치 불효를 하는 것처럼 비쳐 서로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오랜 진통을 겪는 동안 노인들에 대한 복지정책이 대폭 확대되고 사람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수년간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모시던 친척 언니는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무척 힘들어했다. 그리 젊지도 않은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남편은 '요양…'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는 걸 꺼렸고 부모는 무조건 자식이 모셔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유교적인 아집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구순 넘은 부모는 행여나 그곳으로 데리고 갈까 봐 노심초사 며느리 눈치만 살피는 처지가 되었다. 긴 시간을 정신적 고통으로 지내다 보니 결국 생병을 얻게 되었다.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 난 뒤에야 남편과 시어머니는 비로소 처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제야 요양병원에 입원하겠다는 마음을 열어주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누구에게 욕을 할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 잘못과 책임을 지울 수가 있을 것인가.

이미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에 깊숙이 접어든 것 같다. 나날이 발전하는 의료기술과 윤택한 생활수준으로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조기 퇴직자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직 일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떠나 가정에서 머물고 있다. 어쩌겠는가?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음을. 나 역시 곧 짧은 시간 안에 그런 환경에 적응해야 할 나이가 될 터이니 말이다. 오늘도 모닝콜이 울리고 커튼 사이로 총총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 멀리 환히 스며드는 불빛 속에 미래의 내가 서 있는 듯하다.

세속을 버리고 온 자궁 속 같은 밀실

어룽진 기억 꺼내 수십 번 곱씹는다

저 문에 봄이 열리면 그대, 꽃처럼 다시 필

까? -졸시, 「밀실」 중에서 -

윤경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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