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털 뽑힌 닭' 심판하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해 아직 어느 누구도 명쾌한 정답은 내놓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제자들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에서 겨우 이런 정의를 내렸다.

'인간이란 털이 없고 두 발로 걸어다니는 동물이다.'

그러자 며칠 뒤 아리스토텔레스학파에 반기를 들고 있던 디오게네스가 강의실에 나타났다. 그는 털을 모두 뽑은 닭 한 마리를 들고 와 학생들 앞에 던지며 말했다.

'자, 이게 바로 당신네 스승이 정의한 인간일세.'

철학자들의 풍자적 언어유희일 수 있으나 요즘 세상엔 사람의 값어치가 정말 털 뽑힌 닭 한 마리 값이나 되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세칭 '출세한 사람들'의 인생 코스를 두고 생각해보자.

십중팔구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고관대작 후보로 뽑힌다→청문회 가기 전에 언론에서 거의 초주검이 될 지경으로 발가벗긴다→청문회에서 미운털 박히면 야당의 입심 센 의원들 이빨에 또 한 번 갈기갈기 찢긴다→용케 살아나도 이미 만신창이, 국민들 눈에는 '저 양반도 별것 아니었네' 하고 낙인이 찍힌 뒤다. 간신히 구겨진 체면에 말발 안 서는 감투를 써봤자 짧으면 몇 달, 길어야 1년 남짓 회전의자 돌리다가 비리나 부패에 걸려 쫓겨난다. 그리고 감옥 가면 금방 사면복권으로 풀려나고 또다시 한자리 해보려고 기웃거린다. 재수 좋으면 아니, 재수 없어도 대부분 착한 백성들이 또 뽑아준다.

그러니 청문회쯤이야 그때만 잠시 쪽팔리는 것 참고 견디면 되는 통과의례일 뿐,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털 뽑힌 닭 수준의 값어치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국민도 당사자들도 타성처럼 그러려니 받아들여 왔다. 그러니 아래위 할 것 없이 도덕이나 염치를 가볍게 여기는 세상이 된다. 청문회 제도와 운용 방식보다 그런 풍조와 정신 황폐가 더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본질적 문제가 그런 '정신' 부재의 풍토에 있음에도 총리 낙마로 체면을 구긴 쪽에서는 청문회 법제도를 고치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야당은 '웃기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당신들이 야당으로 있을 때는 청문회를 무기 삼아 얼마나 많은 우리 쪽 후보자를 낙마시켰더냐'는 반감이 튕긴 거다. 이번 김용준 총리 후보 경우는 사실상 국회 청문회 문간 앞에도 못 가보고 낙마한 케이스다. 노(老) 후보의 손자, 손녀 학교에까지 쫓아다니며 뒤를 캐는 데야 천하장사 할아버지도 항복할 수밖에 없다.

인물 검증이 청문회장이 아닌 길바닥과 SNS에서 인민재판식으로 심판되는 건 문제가 있다. 물론 국민 세금으로 녹을 받는 고위 공직자의 청문회 검증은 필요한 제도지만 미국처럼 200년 이상 고위직 인준 제도를 운용해온 나라도 가끔씩 덜커덩 걸리는 게 사람 검증이다. 불과 10년 남짓 된 우리의 인사청문회 제도가 그때마다 탈도 많고 낙마가 이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고 청문회 법을 바꾸면 인물 검증이 제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다.

청문회 사태를 보면서 함께 생각해볼 게 있다. 청문하고 심문하는 사람, 그리고 심문 내용을 까발리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연 청문회 도마에 올려진 사람들보다 더 능력 있고 청렴하며 고결한 인격을 지녔을까 하는 의문이다. 불량 먹을거리로 음식 장난치는 사람들, 선진 국회 개혁 법엔 눈감는 의원들, 도덕을 짓밟는 파렴치범들, 수백억씩 챙겨 먹다가 법정 구속되는 재벌 총수들, 정부 지원금을 수십억씩 떼먹고도 택시 기사들 복지는 외면하는 업주들, 그들도 청문회에 세우면 순식간에 털 뽑힌 닭 같은 존재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 결국 죄 없는 자 돌 던지기 같은 청문회가 독약인가, 입에 쓴 약인가를 다투기보다는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라는 논리로 접근해야 맞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찰과 갈등만 부를 청문회 법 개정 싸움보다 인간의 가치, 품성의 회복이 먼저다. 너무 욕심내지 말자. 언제 우리가 남산 위에서 돌 던지듯 아무나 골라 뽑아도 청문회 무사통과할 만큼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왔던가. 함께 반성해야 한다. 허울만 쓴 털 뽑힌 닭 같은 인간이 아니라 '정신'을 지닌 영장(靈長)이 되자는 뜻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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