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완(50)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하는 버릇이 있다.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는 것이다. 날씨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어젯밤 일기예보를 보고 들었지만 한 번 더 눈으로, 몸으로 확인한다. 단순히 맑고 흐린 정도의 날씨만 체크하는 것이 아니다. 온도와 바람, 습도까지 확인한다. 이렇게 해서 출사(出寫)를 간다. "예전에는 하지 않았죠. 사진찍기를 하고부터 생긴 버릇입니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금은방을 운영하고 있는 유 씨는 사진에 미쳤다. 시작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사진찍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그동안 일만 하고 살았는데 사진찍기가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할수록 공부할 것이 많고 찍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유 씨가 사진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친하게 지내던 한 후배가 유 씨에게 사진을 권했다, 일 중독자처럼 일만 하는 유 씨가 안쓰러워보였던 것이다. 카메라까지 사줬다. 등 떠밀리듯 이렇게 유 씨의 사진찍기는 시작됐다. 재미있었다.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져들었다.
"세상에 이런 것이 있었나 싶었어요. 오늘은 또 어떤 것 볼까? 무엇을 찍을까? 출발 전부터 가슴 설레고 기대되는 거예요. 새벽에 나가서 오후 10시, 11시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유 씨였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힘들지 않았고 피곤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쉰 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청춘인 양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고 했다. 카메라를 메고 나선 들녘에는 새봄의 푸름이 막 돋아나고 어느새 따스해진 공기는 포근하게 유 씨를 감싸며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사진은 유 씨의 표현대로 '끊을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됐다.
◆마음의 여유도 생겨
경주와 감포 등 동해안 일대에서 바다 풍경과 일출을 주로 찍었다. 기막힌 일출과 바다 풍경 사진 한 장을 건져내기 위해 부지런히 다녔다.
유 씨는 사진찍기를 시작하고부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배려심이 깊어지고 각박한 일상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며 감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사진은 많은 도움을 준다고 했다.
유 씨는 말갛게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보기 위해 오전 3시에 일어나기도 수십 차례. 마음속 이미지를 표현하려면 작업 앞에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그 어떤 시간도 참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
"아침 일찍 사진을 찍는 이유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죠. 광선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광선의 방향이 사진의 감성을 좌우하니까요. 아침저녁 해 뜨거나 지기 전이 풍경 사진을 찍는 데 최적의 시간대입니다."
풍경 사진을 주로 찍었다. 다른 장르에 비해 인위적이지 않은 다양한 피사체들을 촬영하며 일상과는 일탈된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풍경은 일 년 사시사철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기에 거짓이 없죠. 게다가 사진 앵글이 몇 cm만 벗어나도 그 사진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같은 데 갔다고 똑같은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장면을 찍기 위해, 갔던 곳이라도 또 가게 됩니다."
자연물을 촬영하다 보면 어느덧 그들과 소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했다. 이러한 매력은 내 감성을 키우는 데 최고의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사진촬영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세상살이를 담는 창(窓)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시간이다. "모든 것을 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또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자기성찰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궁궐의 매력에 빠져
유 씨는 업무관계로 서울을 오가다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등 궁궐에 마음을 뺏겼다. 특히 창덕궁의 매력에 반했다. 사진을 하기 전에는 못 느꼈던 것이었다. 궁궐을 사진에 담아보기로 했다. 궁궐을 찍기 위해 서울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창덕궁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를 카메라에 담았다.
"봄도 아름다웠지만 창덕궁의 가을 단풍과 겨울 눈 내린 풍경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수십 차례를 오르내리며 찍었어요. 창덕궁 내 출입제한 지역을 찍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는 사진찍기를 시작한 지 3년 반 만에 25만 장 정도를 찍었다고 했다. "많이 찍은 것입니까? 잘 모르겠어요. 버린 것도 많으니까요."
유 씨는 요즘 호수나 저수지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창녕 우포늪이나 합천댐 등으로 출사를 간다. 물과 안개, 어부, 그 위를 나는 새 등. 그 모습이 아주 좋다고 했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우포늪이 아주 좋아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날씨, 기온 등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밋밋하게 보이던 늪이 새롭게 보이는 겁니다. 매번 달라요. 물과 새, 어부, 그리고 안개.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환상적인 장면인가."
유 씨는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수성못을 카메라에 담는다. 수성못 인근에 살아 산책이나 운동하러 갈 때 카메라를 메고 간다고 했다.
요즘 흑백 사진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날로그 카메라에 흑백 필름을 넣어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대자연과 중국 황산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작년 미얀마에 다녀온 후 더 강렬해졌다. 장기기증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네팔 학교 설립 등에 후원하고 있다.
"뷰파인더로 보는 세계만큼이나 세상이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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