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빠는 힘이 약해서 젖병을 한 번 빨았다가 빼고, 다시 한 번 빨았다가 빼면서 먹어요. 어른으로 치면 물을 한 모금 먹었다 컵을 내려놓고, 또다시 한 모금 먹었다 내려놓는 식이죠."
이제 겨우 생후 4개월이 지난 신중희(가명) 군이 어머니 김지영(가명'31) 씨 품에 안겨 힘겹게 분유를 먹고 있다.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작은 아기는 잘 먹지도 못하고, 토하기까지 한다.
"아기가 지금 많이 아파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1~2㎜ 구멍이 세 개 정도 생겼거든요, 콩팥도 하나밖에 없고, 척추 디스크도 없대요. 그래서 그런지 먹는 것조차 힘들어해요. 얼마나 안쓰러운지…."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오늘도 눈물이 고인다.
◆ "10만분의 16의 확률이 왜…"
중희는 '바테르증후군'을 앓고 있다. 바테르증후군이란 신생아가 척추나 내장 등 여러 곳에 한꺼번에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 병을 말한다. 아직 발병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10만 명의 신생아 중 16명 정도 발생하는 아주 희귀한 병이다. 중희는 바테르증후군으로 인해 심장'신장'폐 등의 내장에 손상을 입었다. 또 척추, 척수신경, 청신경 등에도 이 병의 마수가 뻗쳐 고통받고 있다.
김 씨는 자신의 아이가 이렇게 많은 고통을 안은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중희가 바테르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고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찾아봤겠지만 의사들도 이 병에 대해 잘 모른다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답답했어요. 의사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더군요. 심하면 이 병 때문에 손과 발에도 기형이 생길 수 있는데 다행이 손과 발은 멀쩡하게 태어났다는 겁니다."
중희가 너무 어리다 보니 수술을 받는 것도 힘들다. 그나마 고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청신경 정도다. 중희는 일주일에 두 번씩 청각언어재활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병원 검사 결과 90㏈의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는 '심도 난청' 상태인 중희는 그나마 살아있는 청신경이 죽지 않도록 여러 소리를 들려주면서 청신경을 계속 자극하는 치료를 해 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희를 괴롭히는 것은 여러 가지 감염이다. 중희는 태어나면서 계속 폐렴과 장염을 달고 산다. 몇 주 전에도 폐렴과 요도감염 때문에 김 씨가 중희를 안고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만 했다. 이 때문에 중희는 일주일에 두 번씩 청각 재활치료에다 수시로 병원에 들려 감염 증세에 대한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나마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다행이에요. 인공와우수술 받으면 완벽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듣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니 거기에 희망을 걸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자라면서 차츰차츰 고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래도 복덩이인 아들
중희는 아버지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희의 아버지는 중희의 존재를 모른다. 김 씨가 중희를 임신했을 때 중희의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아기 아빠와 연애하던 도중에 덜컥 중희가 들어서 버렸어요. 아기 아빠도 주변 사람들도 '네 몸이 약하니 제대로 키울 수 없다'며 '애를 지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결국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어느 순간 떠나가더군요."
김 씨는 중희를 임신했을 때 그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김 씨가 중희 아버지를 만난 건 친구와 같이 나간 술자리에서였다. 김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대구에 있는 전문대를 졸업한 뒤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생활비를 벌던 중이었고 갑상선질환과 당뇨병으로 몸이 많이 약해져 있을 때였다.
김 씨는 입학했을 때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는 김 씨가 어렸을 때 이혼 후 각자 재혼하면서 연락이 끊겼고, 김 씨를 맡아 키운 외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김 씨의 학비를 대 줄 여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김 씨는 스무 살 때부터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생활을 해 왔다. 이 생활이 10년 가까이 지속하면서 김 씨의 몸은 갑상선질환과 당뇨병으로 축나고 만 것이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던 김 씨에게 다가간 중희의 아버지 신 씨는 김 씨에게 많은 의지가 됐다. 그렇게 10개월간 연애를 하던 도중 어느 날 약했던 몸이 더 약해졌음을 느꼈다. 늘 아파왔던 김 씨는 약을 먹으며 버텼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병원에 갔더니 '임신'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중희의 아버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낙태를 권유했다. 김 씨도 처음에는 낙태를 고민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 때 들었던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김 씨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중희를 낳고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중희에게 고마워요. 중희 때문에 나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한 번 더 웃게 되는 것 같아요. 낳길 잘한 것 같아요."
◆"한 번이라도 듣게 하고 싶어요."
김 씨는 중희가 커서 정말 청력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력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살리려면 지금이 기회인데, 치료비가 이 기회를 가로막는다. 중희의 경우 첫 돌이 지나야 인공와우수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전에 보청기를 이용해 청신경에 계속 자극을 줘야 들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보청기 가격이 한쪽 것만 290만원이라는 것.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서 80만원의 보조금만으로 살아가는 김 씨는 이 큰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중희를 낳고 나서 들어간 병원비는 전부 카드로 계산했다. 일부는 아는 사람들에게 빌려서 해결하기도 했다. 그렇게 밀려 있는 병원비가 250만원이다. 김 씨 자신에게 들어간 병원비도 50만원가량 밀려 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의료 혜택을 받아도 병원비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검사'치료 항목 대부분이 비급여 항목인 경우가 많아서다.
아직 중희가 어린 탓에 일하기도 쉽지 않다. 매주 네 번은 중희를 데리고 병원이나 재활센터를 찾아야 한다. 게다가 김 씨도 일을 하기 힘들만큼 몸이 축나 있다.
김 씨는 가끔 중희가 자고 있을 때 얼굴이나 배에 귀를 대어 본다. 중희의 숨소리만 들어도 김 씨는 행복하다고 한다.
"중희가 옆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껴요. 듣는 행복이 이처럼 좋은 것일 줄 몰랐어요. 중희도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게 하고 싶은 게 제 소망입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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