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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시티 대구, 의료 100년] 대한의원…1907년 일제가 설립 주도 대한제국 최고 의료

1930년대 병원 자동차.
1930년대 병원 자동차.

1885년 4월 문을 연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은 1894년 갑오경장 기간 중 그 운영권이 조선 정부에서 미국 북장로회로 넘어가 버렸다. 이후 대한제국 정부는 1899년 4월 제중원을 대신할 새 국립병원으로 광제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제는 1907년 3월 '대한의원관제'를 공포하고 기존에 있던 광제원, 대한국적십자병원 등을 한데 합쳐 대한의원으로 만들었다. 설립 과정에서 대한제국 정부의 역할도 있었지만 주도권은 일제가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일제 통감부는 한국 위생을 총괄하는 최고의 수뇌기관을 만든다는 것을 목표로 대한의원 설립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앞서 1906년 7월 일본 육군 군의총감 사토 스스무(1845~1921)가 대한의원 창립위원장으로 부임했다. 사토는 일본 근대 외과학의 개척자로 불린다. 1869년 일본 메이지 정부가 발급한 제1호 공식 여권으로 독일 베를린대 의학부에서 공부한 뒤 1874년 동양인 최초로 의학박사가 됐다. 이후 도쿄제국대학 병원장을 거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군의총감을 역임했다. 조선과 중국의 의학 분야를 장악하기 위해 설립된 동인회의 핵심 멤버로, 혹자는 그를 '의학 분야의 이토 히로부미'라고 부른다.

대한의원은 대한제국 최고의 의료기관이었다. 황실에서는 부지로 조선시대 왕실 정원이었던 함춘원 자리를 내주었다. 원장은 대한제국 내부대신이 겸직했고, 치료부'위생부'교육부의 3개 부서로 구성돼 있었다. 개원 초기 의료진은 의원 17명, 교관 7명, 약제사 9명 등 30명 이상이 있었다. 처음엔 우리 정부의 영향력이 미쳤지만 1908년 이후 일본인이 원장에 취임하는 등 일본인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고 말았다. 대한의원의 설립과 운영 역시 일제의 식민지화 침략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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