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산 영수증을 내야 학점 준다'라고 한 교수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선배에게 책을 물려받을 수도 있는데 굳이 새 책을 사라고 강요하는 건 부당하다"라고 한 학생의 말이 있고, "요즘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책을 사지 않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커피 마시고 영화 보는 돈은 아깝지 않게 쓰면서 교재를 사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이 안타깝다"라는 교수의 주장도 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열을 낸다. 교수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문득 의예과 시절이 생각난다.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진급할 때 고등학교 선배가 이야기했다. 2학년 교재는 걱정하지 말라고. 쓰던 교과서는 고스란히 물려주겠다고.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책값은 선배와 밤늦게까지 마신 술값으로 모두 나갔다. 술 취해 따라간 선배의 자취방, 남아 있는 책이라고는 통계학 책 하나, 그것을 들고 집으로 오면서 수없이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고 다음 날 가정교사 자리를 알아보느라고 바빴다. 그 후 본과 때부터는 모든 책을 샀다.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나왔다. 회진을 하다가 질문을 하자 대답을 못했다. 가지고 있는 신경외과 책을 보자고 했다. 아주 간결하게 내용을 정리해 놓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문제집형 책이었다. 학회에서 발간한 한글로 된 훌륭한 교재가 있는데도.
금요일 공부한 증례를 발표하는 시간, 한 학생이 '뇌수막종의 원인은 바이러스 또는 유전자의 이상이며, 치료는 수술 이외에 방사선 요법, 화학요법 및 호르몬 치료'라고 했다. 놀라서 "원인은 아직 모르고 일부의 연구에서 바이러스 혹은 유전자와 관계가 있다고도 한다. 치료는 수술로 드러내는 것이 원칙인데 부분 절제나 악성의 성질을 보이는 경우 방사선 치료, 드물게 호르몬제제나 항암치료를 시도해 본다"라고 수정해 주었다. 학생이 본 책은 '뇌수막종: 원인 미상. 바이러스. DNA이상. 치료: 절제. 방사선 치료. 항암요법. 호르몬 치료' 등으로 간략하게 기술해 놓은 듯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책을 산다고 하는데 어떻게 불평을 한다냐? 나는 지금까지 애들 책 산다고 하면 한 번도 못 사게 한 적이 없다." 동생이 어려운 신혼살림을 하고 있던 때 책을 자꾸 구입하자 제수씨가 불평한 모양이다. 어떤 선배 문인이 말씀하셨다. 학생 때 어머니에게 '피타고라스의 정의'란 책을 사겠다고 거짓말해서 용돈을 탔다고.
그랬다. 우리 부모님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식이 책을 사겠다고 하면 먹는 것, 입는 것을 줄여서라도 책값을 주셨다. 책을 사자. 아니 책을 사서 읽는 버릇을 들이자.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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