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어릴 적 살았던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산골마을이다. 봄의 깊이가 더해가는 이맘때가 되면 산은 온통 진달래로 뒤덮였다. 당시 또래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오기가 무섭게 책보를 던져 놓고 진달래를 따려고 산으로 달려가 해가 저물 때까지 살다시피 했다. 양식이 부족하고 군것질거리도 별로 없던 그 시절, 진달래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좋은 양식이자 군것질거리였다.
무엇보다도 내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여섯 살 위인 형을 따라 산으로 진달래를 따러 다니던 일이다. 형과 나는 망태기를 하나씩 들고 산에 가곤 했는데, 형은 언제나 꽃잎이 큼지막한 진달래를 망태기 가득 따 담고서는 반도 채우지 못한 나를 향해 "호랑이가 참꽃 따러 온 애들 간 빼먹기 위해 잡아간다더라!"고 소리치고는 혼자 쏜살같이 산을 내려가 버렸다.
그러면 겁에 질린 나는 검정 고무신이 벗겨지도록 달려 내려오기 일쑤였다. 다음에는 반드시 형을 골려주어야지 하고 단단히 벼르고 산에 가면 또 노련한 형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속는 줄 알면서도 그땐 그 말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멀대처럼 키가 큰 형이 어머니께서 찬장 맨 위쪽에 감추어둔 조청 단지를 몰래 꺼내서 방금 따온 진달래를 듬뿍 찍어서 내 입에 넣어 줄 때는 분한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진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었다. 혼비백산하여 산에서 내려오면서 가시 덩굴과 나뭇가지에 긁혀 핏자국이 선명한 팔다리의 상처도 아픈 줄 몰랐다.
그런 형과 나, 그리고 친구들은 이후 고향을 떠나 이제 진달래 만발한 산골마을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봄과 진달래에 얽힌 추억과 고향에 대한 향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퇴색되지 않고 뚜렷하게 남아 있다.
송재하(대구 수성구 만촌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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