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로서의 전옥은 영화의 선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제가나 관련되는 곡들을 직접 부른 경우가 많습니다. '실연의 노래'(범오 작사'김준영 작곡'천지방웅 편곡, 1934)는 1930년대 초반 당시 유행하던 풍조 중의 하나인 자유연애 사상을 한껏 고취시켜 주었습니다.
말 못할 이 사정을 뉘게 말하며
안타까운 이 가슴 뉘게 보이나
넘어가는 저 달도 원망스러워
몸부림 이 한밤을 눈물로 새네
'실연의 노래' 1절
전옥이 부른 노래의 창법은 가슴 속에 깊이 가라앉은 슬픔을 다시 불러일으켜서 그것을 과장하지 않고, 스스로 조절하고 정리하여 심정적 안정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점은 전옥이 출연했던 영화에서 시도된 방법과도 일치됩니다. 위에 인용한 '실연의 노래'만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상적 삶에서의 로맨스를 중심 테마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실연이라는 테마를 좌절과 비탄으로 빠지지 않게 하고, 저급한 센티멘털리즘으로 떨어지는 것도 거부합니다. 역시 전옥이 부른 노래 '피지 못한 꿈'도 청년기 특유의 애잔한 심정을 잘 담아낸 노래입니다. 특히 2절 가사는 '네온사인 불 밑이라 피지 못한 꿈 피지 못한 꿈'이란 대목을 통해 식민지적 근대와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청년기의 내적 고뇌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유도순이 작사하고 외국 곡에 의탁하여 취입했던 노래 '가을에 보는 달'은 한숨, 서러움, 쌀쌀함 따위의 내면 풍경을 전옥 특유의 낭랑하고도 슬픔의 페이소스로 충만한 음색과 창법을 통해 1930년대 초반 젊은이들의 심정을 울렸던 것입니다. 눈물의 여왕이라는 전옥의 별명답게 전옥이 불렀던 노래들은 거의 대부분 슬픔, 괴로움, 고달픔, 실연, 그리움, 상처 따위와 관련된 주제들이 많습니다.
전옥이 남기고 있는 상당수의 가요 작품들은 시인 유도순이 노랫말을 만든 곡들입니다. 작곡가로는 김준영과 호흡을 잘 맞추었습니다. 작사가, 작곡가 두 사람은 전옥의 감성과 표현능력을 잘 이해하여 그 효과에 잘 부합되는 작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리따운 처녀의 고운 자태를 묘사한 '첫사랑'(범오 작사'김준영 작곡)과 '수양버들'(유도순 작사'전기현 작곡, 1936)의 가사에서 마치 혜원 신윤복이 그린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한 전통적 감각과 색조가 느껴지는 어휘구사도 돋보입니다. 이를 전옥의 창법이 잘 소화시켜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전옥의 가수로서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낸 최고의 걸작은 역시 악극 대본으로 구성한 '항구의 일야'가 아닌가 합니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으로는 사랑에 깊은 배신을 겪고 삶의 좌절로 이어지는 고통에 빠진 '탄심'이란 인물입니다. 이 배역을 전옥이 맡아서 크나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탄심의 연인이었던 상대역으로는 이철이란 인물이 설정되었고, 탄심의 친구로 영숙과 의형제를 맺었던 박민이란 인물이 좌절 속에 빠진 탄심을 위기에서 구출해줍니다. 이 악극의 삽입곡을 원래 남일연이 취입했었는데, 해방 후 이미자에 의해 재취입되어 LP음반으로 발매된 적이 있습니다.
이 음반을 통해서 듣는 전옥의 대사는 온갖 산전수전과 세상의 풍파를 다 겪은 노배우의 관록과 역량을 물씬 느끼게 하는 효과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전옥 이외의 배역으로는 성우인 남성우, 천선녀, 김영준 등이 맡았습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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