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북한 핵의 역설

북핵과 관련된 이상한 기류 하나. 지난 1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등과 함께 개인 자격으로 방북했던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가 4월 초, 자못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자신이 방북해서 북한 측에 핵실험과 관련된 자료들을 (이란에) 판매할 생각이 있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었고, 북한은 판매할 생각이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금단의 열매와 같은, 북한의 핵 비즈니스 의향을 드러낸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정부의 일을 맡고 있지 않다고 1월 방북 전후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개인적이고 인도적 차원에서 방북했다'던 리처드슨이 핵실험과 관련된 자료들을 판매할지 북한에 주제넘게(?) 물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이 핵 비즈니스를 할 의향을 분명히 전달했음이 이제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공식 입장인 북핵 불인정과 비핵화 흐름과 배치되는 국면이다. 구글 회장을 동반한 리처드슨의 '1월 방북'에 대해 미 국무부는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반대까지 했었다. 그러나 리얼 폴리틱(현실 정책)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른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미국의 북핵 불인정과 비핵화 공식 입장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북핵 보유를 전제로 한 비확산에 무게를 두는 흐름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당장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7년 10월 대선 유세 때,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이 핵무장 국가 클럽에 합류했다… 북한은 핵무기 8개를 개발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 13일엔 미국 민주당 소속 로버트 메네데즈 상원 외교위원장이 '북한의 핵확산 및 다른 목적으로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민주'공화 양당 7인의 이름으로 발의했다. 비핵화보다 비확산에 중점을 둔 법안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에 참관하는 조건으로 이란으로부터 5천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3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자체적으로 확보한 고폭 처리 기술 등을 포함한 핵기술을 넘길 경우, 이란은 '50억 달러'를 건넬 의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정도면, 지난달 31일 북한 당중앙위원회 최고회의가 발표한 핵 보유와 경제 건설 병진을 위한 종잣돈이 될 수 있다.

북한 핵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20년 이상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북핵 사태의 이면에는 각국이 이를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사태를 키운 구석이 없지 않다. 소련이 무너지고 난 뒤, 미국의 군산 복합 업체들은 군비 삭감을 막기 위해 필요한 위험 집단으로 인민을 굶기면서도 핵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핵을 이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은 2014년 국방 예산안에서 시퀘스터(연방정부 자동 지출 삭감)에 따른 법정 한도보다 무려 520억 달러나 더 높게 책정했다. 일본도 재무장의 빌미로 북핵과 미사일 발사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전쟁과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9조)을 고치기 위한 헌법 96조(개헌 발의 요건) 국민투표에서 북핵 위협을 염두에 두라고 말할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북핵은 한반도에 전운을 더 드리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제레미 수리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더 늦기 전에 북한을 폭격하라"는 칼럼까지 썼다. 한국 국민 누구 하나 이 땅에서 전면전은 물론 우발적인 사고도 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1994년 북한의 영변 원자로 사태가 터졌을 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을 치려고 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단호하게 반대했다. 북한에 대한 폭격은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결국 대한민국의 몰락을 수반할 수 있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지금 북한의 지도 체제는 많이 바뀌었고, 김정은의 뒤에는 이복 누이인 김설송이 자리 잡고 있다. 김정일이 한때 후계자로 염두에 두기도 했던 김설송은 북한 해커 부대의 실질적인 운영자이고, 당 중앙위원회를 총괄하고 있는 북한 실세다. 아마도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1월 방북도 지금 북한의 신실세가 장성택이 아닌 김설송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암시하는 방문인지도 모른다. 이 김설송과 박근혜 대통령은 일면식이 있다. 지난 2002년 방북했던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의 숙소인 백화원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아가서 만찬을 할 때 김설송도 원피스 차림으로 배석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북 관계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상당히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정석을 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이 갖고 있는 인맥을 활용, 남북 문제의 새 물꼬를 트는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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