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문득 길을 잃었다

복도는 길었고/ 나는 벽 앞에서 서 있었다/ 그 벽은 외로웠고/ 외로움이 생각보다 훨씬/ 밑에 자리함을/ 손으로 짚어 알았을 때도/ 복도는 길었고/ 나는 여전히 외로운 벽 앞에/ 서 있었다/-중략-/ 벽은 그래도 내 앞에 있고/ 나는 외로웠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밑에 자리함을/ 벽이 알아차리고/ 더 길어졌다.(이응준의 시 '벽' 중에서)

문득 길을 잃었다. 길이 길을 막고 벽이 되어 있었다. 버티기 어려워 뒤로 물러났다. 걷는 길마다 벽으로 가득하다. 언어의 벽, 거짓의 벽, 사람의 벽, 존재의 벽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벽은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꾸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어올라 넘거나, 부수어 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걸어가야 할 길은 멀었고 나는 오랫동안 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문은 이미 문이 아니었다. 닫힌 문은 이미 벽이었다. 벽은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향해 무거운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으로 쓸쓸했다. 다시 문을 향해 말을 걸었지만 문은 여전히 벽이 되어 응답이 없었다. 삶의 가장자리에 앉아 대답 없는 메아리만 되뇌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아래에서 외로움들이 모여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쓸쓸했다.

바람이 남긴 파편에 움츠리고 앉은 내 그림자가 흔들리면서 그 위에 바람이 불었다.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데 내 언어는 항상 거기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시작도 하지 못한 언어의 날개는 저만치에서 살랑거리다가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내 언어는 늘 추락하는 것이 일상이다. 진실의 가장자리에서만 맴돌다가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리는 것이 내 언어의 본질이다. 이미 내 언어는 언어의 모습을 상실한 셈이었다.

아름다운 교육은 늘 담장 너머에 있었다. 지난날, 나는 맥을 놓고 담만 바라보고 있었다. 별은 여전히 거기 있는데 나는 먹구름 가득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아는가? 막막하던 그때가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분명 그 시간들은 아팠다. 무수한 매질로 인해 수없이 상처 입은 내 안에는 슬픈 바람 소리만 깊었다. 언제나 내 욕망과 절망 사이에는 간극이 없었다. 내 욕망은 언제나 절망과 더불어 길을 걸었다. 아무리 불러도 내 욕망은 대답하지 않았고 희망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그렇게 내 삶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간이 그만큼이나 흘렀고 욕망과 절망을 왕래하던 내 영혼은 갈 길을 잃고 흔들렸다. 하지만 아는가? 결국 여기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끝끝내 버티게 해 준 것은 바로 그 벽, 아름다운 교육에 대한 우리들의 꿈이 나에게 준 견고한 사랑과 눈물이었다는 것을.

무언가에 끊임없이 휘둘리고 살아가는 최근의 학교는 어지럽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어리석은 내가 진실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내 마음의 쓸쓸함이 힘겨웠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선생님이란 직업이 좋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을 게다. 구체화되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냥 꿈틀거리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그 꿈을 찾아가고 그 꿈에 다가가는 걸 도와주는 존재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꿈을 도와주는 그것이 바로 내 꿈이 되는 아름다운 풍경. 선생님은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사람이다. 항상 무언가가 부족하여 부끄럽기만 한 내 자화상이지만 그래도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언제나 행복하고, 내가 마음으로 그린 풍경에, 그 아름다운 풍경에 빠지고 싶은 것이 내 진심이다. 아직은 벽을 앞에 둔 마음처럼 힘들겠지만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모두 행복한 그런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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